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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랩] “너희들 먼저 구하고...” 못다 핀 22살 승무원
승무원 박지영 씨, 동생같고 부모같은 승객들 필사적 구조…구명조끼 양보하며 마지막까지 탈출 도와
아비규환이었다. 배는 기울고 물건들은 깨지고, 이리저리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불안과 공포뿐이었다. 탈출은 커녕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물은 차오르지만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 선장마저 배를 버리고 떠났다. 하지만 여승무원 박지영 씨는 승객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박 씨는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하던 세월호에 끝까지 남았다. 동생같은 학생들을, 부모님같은 승객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선체가 기울어 움직이지도 못한 상황에서 박 씨는 당장 구명조끼부터 구하러 다녔다.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지만 배 곳곳을 돌아다니며 있는대로 가져와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여기저기 긁히고 다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학생들에게는 “우리 모두 구조될거야”라며 마음부터 달랬다. 


하지만 순식간에 배에 물이 차올랐다. 상황이 급박해졌다. 박 씨는 학생들을 무조건 밖으로 대피시켰다. 배는 갈수록 기울어졌다. 물은 계속 들이 닥쳤다. 박 씨는 “빨리 바다에 뛰어들어라. 높은 데로 올라가라”고 목이 쉬어라 외쳤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며 문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학생들과 승객들을 밀쳐내기만 했다. 밖으로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본인의 몸에는 구명조끼 하나 없었다.

박 씨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학생은 “승무원 누나가 나보고 빨리 위로 올라가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도 “모두 무서워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홀로 우리에게 용기를 줬다”고 전했다. 한 승객은 “3층에 있던 여승무원이 모두가 탈출하는 마지막까지 안내방송을 하고, 학생들에게 먼저가라고 고함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세월호 첫 사망자로 확인된 이는 박 씨였다. 힘든 가정환경에서도 늘 밝았던 박씨. 대학에 입학했지만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청해진해운에 입사했다. 아버지는 3년 전 간 질환을 오래 앓다 돌아가셨다. 홀어머니, 여동생과 살며 가계를 도왔다. 박 씨는 13시간 이상 배에서 일하면서도 힘든 내색없이 늘 웃었고 인사성이 밝았다고 한다. 의리와 자립심도 강해 집안의 기둥이었다는게 유족들의 말이다.

박 씨는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정작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구명조끼를 건네받던 한 학생이 ‘왜 언니는 안 입느냐’는 물음에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나갈께”하고 말했던 박 씨. 그 마지막은 ‘마지막 생존자’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이 됐다.

학생들을 위해 생명까지 양보한 박 씨. 그녀의 나이 역시 채 피지 못한 ‘22살’이다.

권남근 기자/happy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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