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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 어느 베테랑 증권맨의 고백 “이대로 가다간 애널리스트 직업 사라질수도...”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이대로 가다가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국내 중형 증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10년차 A수석연구원이 기자에게 한 말입니다. 요즘 애널리스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내우외환(內憂外患)입니다. 안으로는 장기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 칼바람에 시달리고 있고, 밖으로는 ‘CJ E&M 사건’으로 수많은 연구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활동에도 제약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때 자연스럽게 붙어다녔던 ‘증권가의 꽃’, ‘억대 연봉’,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등 화려한 수식어들도 이제는 빛이 바랜 모습입니다. 


종사 인력의 급격한 감소만 봐도 심각성이 잘 드러납니다. 12일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62개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 숫자는 1300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2011년 1550명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매년 70~80명씩 줄어든 셈입니다. 리서치센터가 비수익 부서이면서도 억대연봉자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대형 증권사의 B연구원은 “애널리스트는 대부분 계약직이기 때문에 회사 측이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 가장 손쉽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기존에 받던 억대 연봉을 대폭 낮춰서라도 업황이 그나마 괜찮은 자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로 이직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 증권사는 최근 연봉 재계약에서 직원 연봉을 일괄적으로 40%까지 삭감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C연구원은 “최근 3년 동안 매년 10%넘게 연봉을 삭감당했다”면서 “고액 연봉보다는 회사에 오래 남아있길 바라는 애널리스트가 더 많아지는 상황”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미래의 애널리스트가 되는 RA(연구보조원) 숫자가 크게 줄어든 점도 전망을 어둡게 합니다. 3년 전만 해도 한 증권사에 RA가 기본적으로 20명 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10명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대형 증권사의 RA 평균 연봉 역시 몇년 전까지 6000만~8000만원이었지만 최근엔 3000~4000만원 수준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장 회사 사정이 어렵다보니 힘없는 RA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근무환경이나 대접도 예전같지 않다고 합니다. 잘 아는 기관투자자에게 영업을 해 오라는 명령이 떨어지는가 하면, 인력부족으로 여러 섹터(업종)의 리서치를 억지로 떠맡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CJ E&M 사건을 기점으로 IR 담당자와의 교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기업 탐방을 나가도 비우호적인 대접을 받기 일쑤라고 합니다. A연구원은 “예전에는 IR 담당자들과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있으면 그래도 한두 가지 정보는 더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실상 언강생심”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더구나 기업들이 공시한 내용만 아니면 보고서도 마음대로 쓰지 못합니다. 보고서 발행 횟수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보고서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 연구원은 “요즘엔 보고서를 쓰기가 너무 어렵다. 나오는 보고서도 예전에 비해 밋밋해진 게 사실이다”고 말했습니다.

박사학위나 금융 자격증 등 높은 스펙을 갖고 있어도 이직이 쉽지 않습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은 내부적으로도 경쟁이 심하고 ‘애널리스트들은 돈만 밝힌다’는 편견이 여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도 긍정적인 면은 있습니다. 먼저 ‘매수’ 의견 일변도였던 보고서들도 ‘매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미공개 정보의 교류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정말 실력 있는 애널리스트가 더 부각될 수 있게 됐습니다.

일부 증권사는 사실상 ‘공짜’였던 기업분석 보고서에 대한 유료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외국계 증권사들은 리서치 자료를 법인고객에 한해서만 엄격하게 배포하고 있습니다.

A연구원은 “증권업의 근본은 바로 리서치”라면서 “지금은 비록 다같이 어렵지만 경기가 살아났을 때는 리서치가 탄탄한 증권사들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내 리서치센터가 글로벌 금융사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수준으로 도약하길 기대해 봅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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