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며 입법원(국회)을 점거해 농성을 벌여오던 대만 학생운동단체가 오는 10일 농성을 중단키로 했다.
입법원이 점거된 것은 대만 헌정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학생들은 이 협정이 발효되면 대만 경제의 중국 종속화가 가속화되고 중국 노동력의 대거 유입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이 개방되면 거대자본을 앞세운 중국기업들이 대만의 기존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란 우려감이 높다. 대만은 중소기업이 발달한 나라로 이는 대만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대만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경제적 요인 뿐만이 아니다. 깊숙이 들어가면 중국과의 ‘통일’에 불안해하는 목소리를 읽을 수 있다.
최근 발생한 러시아의 크림반도 접수는 이같은 우려감에 불을 지폈다. 푸틴은 대담하게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편입시켰고 오바마는 저지할 카드를 내놓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상당수 대만인들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혈접수한 것처럼 이번에는 중국이 대만을 삼켜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네덜란드 식민지였다가 청나라 통치를 받게된 대만은 청·일전쟁의 전리품으로 1895년 일본에 할양됐다. 대만은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일본의 통치를 받았다. 따라서 대만인들은 1911년 발발한 신해혁명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후 일제 지배에서 해방됐으나 장제스(將介石)의 국민당이 몰려오면서 대만은 또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된다.
대만에 진주한 국민당은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만인들 사이에서 “우리와 대륙의 중국인들은 서로 다르다”는 의식이 결정적으로 형성됐다.
1947년 2월 전매국 단속원들이 타이페이 길거리에서 밀수담배를 팔던 좌판상 여인을 과잉단속하는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하면서 대만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2·28 사건’이라는 반 국민당· 반 외성인(外省人) 민중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대륙에 있을 때도 ‘폭력’을 자주 이용했던 장제스는 이번에도 무차별 탄압에 나섰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상이나 행동이 발견되면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했다. 대만 토착세력의 씨를 말려버릴 기세였다. 2·28 사건 때 발령된 계엄은 1987년까지 계속됐다.
대만의 인구는 약 2300만명이다. 그중 84%가 명·청 시기에 이주한 내성인(內省人)이고 14%는 1949년 전후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한 외성인이다. 나머지는 고산족 등 원주민들이다
대륙에선 “중국인과 대만인의 구분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인 생각이다.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다. 특히 야당 성향이 높은 대만 남부에는 “대만과 중국은 서로 다르다”라는 생각하는 대만인들이 상당히 많다.
중국 정부로서는 대만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번에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한국 역시 이런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위해 우리가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 곰곰히 생각해볼 때다.
박영서 베이징 특파원/py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