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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왕국’, 엘사는 어떻게 ‘천만여왕’ 이 됐나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한국에서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뒀다. ‘겨울왕국’은 지난 1월 16일 개봉해 27일까지 981만8338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집계)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달여가 지난 최근까지 평일 4만~6만명, 주말 15만명 전후의 일일관객수를 기록하는 추세대로라면 3월 1~2일 중에는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며, 외화로선 ‘아바타’에 이어 두번째 천만 고지 등정이다. 외화와 한국영화를 모두 포함한 역대 국내 개봉작 중에선 11번째로 1000만 관객을 넘는 작품이 된다.

‘겨울왕국’의 두 자매 엘사와 안나는 어떻게 한국 관객 1000만명을 홀렸을까? 겨울극장가의 ‘여왕’으로 등극한 이 작품이 한국영화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애니, 마이너 장르의 반란…국내 극장시장의 확장과 관객 취향의 다양화

‘겨울왕국’의 천만 관객 돌파는 대중 영화 장르 중 국내 극장 시장에서는 ‘최후의 마이너’였던 애니메이션 장르가 당당히 주류에 들어섰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국내 극장가에서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영화는 오랫동안 변방을 면치 못해왔으나 지난해 ‘레미제라블’과 올해 ‘겨울왕국’의 대규모 흥행은 의미심장한 변화를 보여준다.

국내 극장가에서 주류는 한국영화다. 그 중에서도 역사와 사회를 반영한 사실주의적인 경향, 즉 리얼리즘 영화가 대세 중의 대세다. 역사에서 소재를 취하고,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이슈와 변화를 반영하며, 현실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중심의 한국영화가 제작 편수와 흥행작 추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해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극장시장이 팽창하고 관객이 급속하게 늘면서 흥행 장르도 다양화됐다. 극장 시장에 젊은 세대가 새롭게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30~40대 이상의 기성 세대들의 구매력이 높아진 결과다. 지난 2009년엔 외화로선 처음으로 ‘아바타’가 1000만명을 넘는 대규모 흥행을 기록했다. ‘리얼리즘 경향의 한국영화’에 비해 ‘마이너’라 할 수 있는 ‘판타지 외화’가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700만명을 넘고 1000만명까지 근접한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괄목할만한 성적도 같은 맥락에서 분석된다. 


▶‘겨울왕국’, 아이와 가서 부모가 열광하다…가족영화로서 애니

어린 자녀를 보여주러 가서 부모가 웃고 나왔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빚어내는 흔한 풍경이다. ‘겨울왕국’도 마찬가지였다. 방학을 맞은 유아부터 초중고 학생 등 어린 자녀들을 보여주러 갔다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못 뜬 이들은 부모, 특히 엄마들이었다. ‘겨울왕국’ 이전까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던 ‘쿵푸팬더’는 특히 아빠들을 열광시켰다. 국내에서는 극장과 수입사간의 갈등으로 상영관수가 적어 대규모 흥행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는 ‘겨울왕국’ 버금가는 흥행열기를 이어가고 있는 ‘레고 무비’는 오히려 부모들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유달리 맥을 못 추는 장르였지만 미국에서는 역대 흥행작 상위권에 줄줄이 포진해 있고, 주요 시즌마다 1~2위를 다투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치밀한 전략과 마케팅의 산물이다. 성별, 세대별로 즐길 수 있는 인물과 서사, 문화적인 코드를 한 작품에 치밀하게 배치한다. ‘어린이용’에도 성인관객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농담이나 인용, 말장난, 패러디 등의 성적, 언어적, 문화적 유머, 유희를 숨겨 놓곤 한다. ‘가족영화’란 누가봐도 무난한 작품이 아니라 성, 세대, 인종을 초월해 각각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 작품에 결합시킨다는 의미다.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최고 흥행기록을 가진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저연령층 아동을 위한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아직도 강하지만, ‘겨울왕국’은 아동부터 십대 청소년, 2030, 4050 세대 등 전연령을 아울러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라고 주된 흥행 이유를 꼽았다. 심대표는 “국내에서는 가족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작품들이 실제로는 아동이 보기엔 어렵고, 성인들이 즐기기엔 재미없는, 결국은 어느 세대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흥행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다.

반면, 한국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재미있는 동물 캐릭터들이 나오는 우화였고, 어른들이 보기에는 종과 관계, 자연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성숙한 텍스트로서 ‘가족영화’의 의미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극장상영 당시 ‘아동용’으로 인식돼 성인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 평일 저녁, 주말 시간대에 상영관을 확보할 수 없었다.

▶‘겨울왕국’…싼값에 즐기는 최고 수준 브로드웨이 뮤지컬

국내 뮤지컬 공연 시장은 지난 10여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반면, 극장가에서 뮤지컬 영화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맘마미아’와 ‘레미제라블’에 이은 ‘겨울왕국’의 흥행은 두 장르간 엇갈려왔던 추세의 새로운 ‘접점’을 확인했다. 턱없이 높은 관람료가 장벽이 됐던 뮤지컬 공연의 대안이 뮤지컬 영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방학이나 휴가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설명절, 밸런타인 데이 등 특수가 있는 겨울극장가에서 뮤지컬 관람이 가족이나 연인 관객의 ‘이벤트’로서 꼽히는 상황에서 공연 대신 영화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미제라블’과 ‘겨울왕국’이 지난해와 올해 비슷한 시기 겨울극장가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레미제라블’은 영국 웨스트엔드-미국 브로드웨이의 히트 뮤지컬을 원작으로 했고, ‘겨울왕국’은 미국의 뮤지컬 톱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정통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노래와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었다. 우리말 더빙버전도 미국판 버금가는 뮤지컬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주요 노래를 모두 뮤지컬 스타배우들이 불렀기 때문이다.

심재명 대표는 “브로드웨이 정상급의 뮤지컬, 비싼 공연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동을 저렴한 관람료의 영화로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레미제라블’과 ‘겨울왕국’의 흥행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엘사-안나 자매, 3040여성들을 움직이다

장발장과 류승룡이 난 자리에 엘사와 심은경이 찾아왔다. 2013년초엔 장발장의 노래와 바보아빠의 딸사랑이 객석을 울리더니, 꼭 1년 후엔 ‘엘사’의 노래와, 되찾은 엄마의 청춘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해외뮤지컬영화-한국 휴먼코미디 가족영화라는 공식은 반복됐고, ‘성별’은 바뀌었다. 2013년 ‘레미제라블’과 ‘7번방의 선물’은 아빠의 이야기였지만, 올해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는 자매와 엄마, 즉 여성의 서사였다.

그래서 ‘겨울왕국’과 ‘수상한 그녀’는 여성관객들을 더 많이 움직이게 했다. 일단 인터넷 영화전문예매사이트인 맥스무비에 따르면 ‘레미제라블’은 예매관객의 남녀별 비중이 44대 56으로 나타났고, ‘겨울왕국’은 42대58로 여성이 소폭 늘었다. ‘7번방의 선물’ 역시 여성예매자비율이 57%였으나 ‘수상한 그녀’에선 3%포인트가 늘어난 60%에 달했다. 여성 관객들의 호응이 올해 흥행작 2편에 더 뜨거웠다는 얘기다.


특히 ‘겨울왕국’에선 3040세대 여성들의 호응이 두드러졌다. 예스24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겨울왕국’ 예매자의 성별 비율에선 여성이 65.1%로 압도적이었다. 전체 여성 예매관객 중에선 30대가 39%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20대(28.2%)와 40대(21.2%)가 이었다. 여성 중에선 3040세대가 무려 60.2%로 나타났다.

영화 뿐만 아니라 관련 상품 구매에서도 3040세대 여성이 가장 두드러진 소비자층이었다. ‘겨울왕국’의 도서, 음반 관련 상품이 40종이 넘는 가운데 출판 분야에서는 무려 6종이 베스트셀러 톱 20에 올랐다. 그 중에서 영어 원서 ‘Frozen’의 구매 비중에선 40대 여성이 33.5%로 가장 높고, 30대 여성이 28.5%를 기록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엄마들이 지갑을 연 결과다.

수록곡 ‘렛 잇 고’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OST의 구매자의 성ㆍ연령별 비중에서도 30대 여성이 24.8%로 가장 높았고, 40대 여성이 23.8%로 그 뒤를 이었다.

▶신드롬: 영화-도서-음반의 총공세 & ‘덕후’의 활약

‘겨울왕국’ 신드롬은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스’라고 하는 다양한 관련 상품의 출시에도 힘입은 바 컸다. 또 열혈팬이나 마니아를 지칭하는 인터넷 은어인 ‘덕후’(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다쿠’에서 유래)들의 활약도 흥행을 부채질했다.

‘겨울왕국’은 개봉 및 흥행과 함께 영어 원서와 워크북, 오디어북, 어린이 동화책, 스티커북 등 다양한 도서 상품이 출시됐다. 또 영화 삽입곡을 담은 OST 음반도 디럭스, 스탠다드, 한국어 더빙 등 다양한 버전으로 선을 보여 인기를 끌었다. 최성열 예스24 마케팅 팀장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연관 구매로 인한 도서, 음반 등 관련 상품이 동반 인기를 누리는 현상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특히 ‘겨울왕국’의 경우 원소스 멀티 유스를 고려한 제작사의 마케팅으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됐다”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겨울왕국’의 열혈팬을 자처한 가수들의 주제곡 가창 동영상이나 방송, 관객들의 패러디 영상이나 이미지 등도 봇물을 이뤄 ‘겨울왕국’의 인기를 기름을 부었다.

▶90년 디즈니, ‘미키 마우스왕국의 위엄’

‘겨울왕국’의 흥행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지만, 무엇보다도 그 바탕이 된 것은 작품이 가진 힘이다. 이 영화의 제작배급사인 월트 디즈니는 1923년 설립돼 지난해 90주년을 맞았다. 미국에선 ‘겨울왕국’이 지난해 11월 개봉해 지난 26일까지 북미지역에서만 3억8485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거둬들였으며, 이를 포함한 전세계 매출은 9억8512만달러에 이르렀다. 1조원이 넘는 액수다. 미국과 전세계 역대 흥행 19위에 올랐으며,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작품 중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미구 개봉 후 한국엔 약 2달만에 상륙했던 ‘겨울왕국’은 ‘디즈니 왕국’의 ‘위엄’을 완벽하게 드러내고 요약하는 작품이었다. 디즈니의 초창기 역사를 상징하는 ‘백설공주’처럼 유럽의 고전동화(안데르센의 ‘눈의 여왕’)로부터 원작을 취했으며, 여기에 3D영상기술로 현대적이고 미국적인 숨결을 불어넣어 어린 세대의 꿈과 모험, 환상, 그리고 사랑, 가족애라는 디즈니 왕국의 전통적인 가치를 구현했다.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라푼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대표할 뿐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한 장르인 ‘뮤지컬’로서도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영화 본편 전에 상영되는 단편 애니메이션 ‘말을 잡아라!’는 디즈니를 상징하는 미키 마우스를 주인공으로 했고, 고인이 된 월트 디즈니의 생전 육성을 목소리로 입혔으며, 낡은 흑백 필름 릴과 3D컬러영상이 교차하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이 작품만으로도 디즈니의 상상력과 90년의 전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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