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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신창이, 악플<악성 댓글> 코리아
“어택!어택!” 억장 무너지는 사이버세상
연예인 개인 멸시부터 대통령 조롱까지…
불통시대 논란속 배려는 사라진지 오래

불안한 사회상 반영 정신분열현상 해석
“명백한 범죄행위” 처벌기준도 도마위에




어택(Attack) 세상이다. 심하다. 해도 너무한다. 온라인상에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남의 심장에 비수를 던지는 인신 공격적 악플이 넘쳐난다. 비극적인 개인ㆍ가정사까지 비아냥대고 조롱하는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진다. 연예인은 무조건이고 대통령의 기자회견까지 그 대상이다. 일부 계층의 철없는 짓이라고 보기에는 도가 지나치다. 정신병에 가깝다. 그건 사회의 병이 되고 있다.

어택, 전쟁이나 스포츠에 어울릴 만한 이 단어가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사회문제가 된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요즘 도가 너무 지나치다. 특히 비극적인 개인ㆍ가정사에 대한 멸시, 대통령 회견까지 둘러싼 조롱 등이 넘치면서 사이버세상은 쓰레기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남의 불행을 캐고, 비웃고, 거기에서 위안을 얻는 사회적 병든 심리가 반영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병적인 공격적 집단심리가 해결되지 않고는 소통과 상생이라는 대한민국 과제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산다는 게 소름 끼친다.”

지난 7일 한 네티즌이 탄식하며 올린 글이다. 인기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31ㆍ본명 박정수)의 불행한 소식이 전해지자 살이 떨릴 정도의 인신공격성 악플이 인터넷 공간을 도배한 직후다. “질질짜지 말고 군대복귀나 빨리 해라”, “연예병사로 꿀 빠는 벌을 아버지와 할아버지ㆍ할머니께서 대신 받았다”, “군대도 놀이방마냥 들락날락하면서 얄미운 짓만 골라하더니” 등의 이해못할 조롱이 넘쳤다. 위로는커녕 당사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악담이었다.

이처럼 불행을 겪는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약자가 된 이들을 오히려 공격하는 비정상적 행태는 반복돼 왔다.

지난해 배우 박시후가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을 때 일베(일간베스트)에는 “박시후가 성폭행 했으면 감사해야지”라는 내용의 SNS 캡처 사진이 올라왔다. 가수 임윤택 역시 사망 직전까지 ‘암케팅(위암 투병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이라는 말에 시달렸다. 최준희 양이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하며 최진실 씨 딸임을 밝히자 채팅창에 “죽은 ○○가 쓰던 글로브 좀 보여달라”는 등 막말이 폭주했다.

최근의 악플도 보기가 두려울 정도다. 영화 ‘변호인’의 포털사이트 영화평점란에는 여전히 “번지점프 영화 만드냐?”, “부엉이 바위를 명소로 만든 업적” 등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듯한 말이 남아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가진 기자회견을 놓고 조롱의 언사들이 댓글을 장식해 대한민국의 병든 사이버 사회상을 노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때가 되면 떼거지로 움직이는 ‘저주 퍼레이드’를 단순히 인터넷 특성 탓으로 돌리면서 방관하는 것은 이젠 절대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악플을 뿌리 뽑는 동시에, 억압적 사회 분위기를 걷고 시급히 건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우리 모두 다 억울함ㆍ분노에 짓눌려 있다”며 “기업은 기업대로, 백수는 백수대로 각자의 열악한 상황에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 그 감정을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터뜨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SNS 등 발달한 인터넷 기술을 우리의 성숙함이 못 쫓아가는 ‘문화 지체현상’인 측면도 있다”며 “자기중심적으로 키워진 젊은 세대가 남을 배려하거나 남의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기 한풀이를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불통의 시대가 원인이라는 시각도 뒤따른다.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 까닭은 사회ㆍ문화적 분위기와 관련이 가장 크다”고 했다. 건전한 소통을 배우지 못한 계층들이 개인의 비극적인 불상사에 분노와 억울함을 ‘비겁하게’ 표출한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예컨대 정부 당국이 직접 나서 SNS 유언비어 유포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내면에 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쌓게 된다”며 “그 감정을 공격해도 안전한 애꿎은 연예인들에게 집중 포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안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병질증후군(개인의 정신분열 현상이 사회로 확산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사회가 안정돼 있으면 타인의 불행에 ‘안타깝다’는 반응과 같은 선(善)한 본성을 드러내는데, 점점 어렵다보니 ‘새디스틱(sadistic)’한 감정을 쏟아내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이 같은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악플 행태에 대한 경고음은 계속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데 심각성이 더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온라인ㆍ오프라인 구분이 없는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심각한 악플은 분명한 범죄 행위임을 인식시키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건전한 소통장소를 활성화하는 등 획기적인 사회적 흐름 변화 없이는 이런 현상은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이지웅 기자/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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