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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북 놀이’ 왜?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2013년 최고 유행어를 꼽으라면 ‘종북(從北)’을 꼽겠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 중 하나다. 실제 인터넷에 종북을 검색하면 뉴스, 트위터, 블로그, 커뮤니티 등을 막론하고 종북이란 단어가 굵은 글씨체로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원래 종북은 북한을 추종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세력을 가리키는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즉, 정상적인 체제를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자 자기검열의 단어였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종북은 풍자를 위한 소재쯤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쩌다 종북이 이렇게 헐값이 됐을까.

▶종북몰이? 종북놀이!=종북이 풍자의 재료로 활용되는 사례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달 28일 온라인 매체 ‘슬로우 뉴스’에 ‘종북 테스트’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적이 있는가?” “국정원은 개혁되어야 하는가?” 등 34개 질문을 제시하고 여기에 “예”라고 답하는 순간 종북이라는 판정을 받고 테스트는 끝나버린다. 반면 테스트를 무사히 완료했을 경우 마지막에 ‘축하합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애국시민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정부와 다른 의견을 냈을 경우 가차 없이 종북으로 몰리는 세태를 풍자한 셈이다. 일부에선 종북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게시물은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트위터에서도 종북 풍자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북한은 아직도 주말에 일하는 주 6일제라고 한다. 토요일에도 일하는 회사는 종북이다.”(@haz*******), “전국 산악회들은 겨울눈 쌓인 산에 등반할 시 간첩으로 오인 될 수 있으니 겨울 산행을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J_h*****) 등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유명인들도 풍자에 가세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의총 때 평양냉면 먹어도 종북이냐, 종은 교회에 북은 절에 있다. 풍자로 웃겼더니 비판하는 의원도.”(@lsh4u )라고 했고,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미 극우보수주의자들의 비난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교황 성하도 종북세력?”(@jwp615)이라는 글을 올렸다. 방송인 김제동 씨 역시 “제 고향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많아 바로잡습니다. 저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입니다.”(@keumkangkyung)라는 트윗을 올렸다.

‘종북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지난 5일 가수 백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7일 서울 종로에 치한 영풍문고 앞에서 ‘종북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백자는 트위터에서 “종각 가서 ‘종’ 함 보시고 영풍문고에서 ‘Book’ 보시고 종북 콘서트 참가하시믄 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오늘 21일에는 종북 연극제도 열린다고 한다.

충남 부여 소재 도로인 종북로 지도 화면을 올려놓은 트위터

▶종북은 왜 동네북이 되었나=이처럼 종북의 아우라가 해체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종북을 너무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입장을 달리 한 사람들을 모두 종북이라 비판하고 심지어 보수인사인 조갑제 씨까지 종북이라고 규정한 결과다. 최근엔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 군이 트위터 프로필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진을 올린 것을 두고 종북이라고 몰아붙인 사례마저 있었다”고 지적했다. 종북을 남발하다 보니 종북이 품고 있는 의미가 옅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진 교수는 ‘사람들이 분노가 아닌 비웃음으로 반응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 1년 동안 분노로 대응해왔는데 나중에는 그것마저 안 되니까 그냥 조롱하고 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다시 말해 누군가 굉장히 기계적인 행동을 반복할 때 사람들은 웃게 마련인데, 섬세한 판단이 아니라 ‘우리편 아니면 종북’이라는 극단적이고 기계적인 도식을 나타내니까 이를 보고 사람들이 비웃게 된다”고 했다.

진중권 교수 트위터 화면

종북이라는 정의가 잘못됐기 때문에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위원장은 “말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태에 대해 딱 맞게 써야 통용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그는 “하지만 종북이라는 말은 일부 세력이 정치적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소수 있을지도 모르는 종북을 엉터리로 일반화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민주화 이후 안보 이외에 평화, 인권, 경제 민주주의 등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을 모두 종북이라고 규정한 것이 문제”라며 “종북이라는 말이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말이 돼버리면서 조롱의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국민에게 위협을 주는 존재가 되지 못하는 탓에 종북이라는 말이 공감을 사기 어렵게 됐다는 해석도 있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종북은 매카시즘만큼이나 무서운 말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보안법까지 엄연히 있다”고 말했다. 설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북이 희화화된 것은 북한 체제가 두려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망한 것은 아무에게나 공산주의라는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었다”며 “명백한 종북주의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북한과 대화를 해서 평화적인 통일을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니 종북이라는 말 자체를 국민들이 우습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무분별한 종북 딱지가 비웃음을 산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향상됐다는 하나의 지표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종북의 미래=이런 현상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종북 프레임’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진중권 교수는 “어버이연합의 화형식에서 보듯 요즘 극우파들은 매우 활성화되어 있고 최근에는 국정원ㆍ일베처럼 새로운 현상까지 맞물려 있는 상태”라며 “종북 프레임이 희화화됐지만 앞으로 4년 내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동훈 교수 역시 “종북 프레임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하나는 상대방을 흠집내고 다른 하나는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것”이라며 “예전처럼 효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수 위원장은 “종북 프레임은 이를 사용하는 측에게 자칫 부메랑이 될 위험성이 높다”면서 “버릴 수도 없고 안 버릴 수도 없는 계륵처럼 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북한 김정은 불안과 연계돼 앞으로도 종북 프레임은 계속해서 사용될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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