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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으로 사유하기 ‘히로시 스기모토’가 왔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흐르는 시간을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있을까? 태고의 인간이 바라본 지구의 풍경을 지금도 우리가 볼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이론으로 가시화 시킨 수학ㆍ공학을 예술로 치환할 수 있을까? 한장의 사진에 역사의 여러 순간을 동시에 담을 수 있을까?

이런 철학적인 질문에 사진으로 답해온 히로시 스기모토(65)의 개인전이 열린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현대 사진의 거장 히로시 스기모토의 대규모 개인전 ‘히로시 스기모토_사유하는 사진’을 5일부터 내년 3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스기모토의 대표적 사진 연작 및 최근의 조각설치와 영상을 포함하는 49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장인적 사진 정신ㆍ간결한 형식ㆍ깊이 있는 철학으로 특징 지어지는 스기모토의 작품은 바쁜 현대사회 그 속에서 살아남기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영원성과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말을 맞아 한 번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전시로 보인다.

번개 치는 들판 구성 012_오른쪽, 젤라틴 실버 프린트, 152.4 x 1443.6cm(152.4 x 721.8cm/2set), 2009. ⓒ Hiroshi Sugimoto

스기모토는 서구에서 더 많이 알려진 작가다. 일본 도쿄의 릿교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LA 아트센터 디자인 컬리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미술, 역사, 수학, 과학, 종교, 철학에 다양한 관심을 보이는 작가는 19세기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고, 전통적 인화방식의 장인적 기술의 사진을 구현한다. 전시장을 찾은 스기모토는 “아주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뉘앙스가 모노톤으로 담겨있다. 컬러 사진보다 아름답다. 사진은 예술을 표현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라고 흑백사진의 매력을 설명했다.

그는 1974년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시 미니멀리즘ㆍ대지미술 등 실험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사진이 정말 사실을 담아내는가 하는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비평도 활발하게 공유해 이런 담론을 담아낸 작품도 많이 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극장’, ‘바다풍경’, ‘초상’, ‘번개 치는 들판’, ‘가속하는 불상’, ‘디오라마’, ‘개념적 형태’ 등 총 7개의 연작이 선보인다. 대상을 순간 포착해서 찍은 것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하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만나는 ‘번개 치는 들판’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최신작이다. 광활한 대지에 번개가 내리 꽂는 듯한 이 대형 작품은 대지 미술가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거대한 번개 드로잉을 연상시키지만 사실은 40만볼트의 전기를 금속판에 맞대는 목숨을 건 실험으로 만들어낸 인공번개 이미지다. 19세기 사진 발명가 윌리엄 폭스 탈보트(W.H.F.Talbot)의 생가를 방문했다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진과 정전기를 결합한 새로운 사진을 만들겠다는 과학자 같은 아이디어로 다양한 방전 실험을 통해 번개, 나무, 원시 생명체와 같은 우연적인 형태들을 만든다. 작가는 이런 사진을 통해 생명 탄생의 기원, 우주적인 시공간으로 사유의 범위를 확장한다.

시간에 대한 사유는 ‘바다풍경’과 ‘극장’ ‘초상’ 연작에서 드러난다. 특히 ‘바다 풍경’은 인간이 인간임을 자각하기 시작한 때, 인간이 바라 봤던 지구의 풍경을 담았다. 고대인이 바라본 지구의 풍경과 현대인이 보는 지구의 풍경 중 변치 않고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 ‘바다’일 것이다. 작가는 제주해, 에게해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다의 풍경을 담았다. 장시간 노즐의 노출을 통해 사실 어느 바다인지 언제 촬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수평선을 기준으로 하늘과 물 만이 남아 ‘바다’ 원형의 이미지만 걸러냈다. 태고의 바다란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여행이다.

번개 치는 들판 구성 012_왼쪽, 젤라틴 실버 프린트, 152.4 x 1443.6cm(152.4 x 721.8cm/2set), 2009. ⓒ Hiroshi Sugimoto

한 편의 영화를 한 프레임에 담아낸 ‘극장’은 시간을 빛의 요소로 환원한 작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미지가 가득했던 실버스크린엔 아무것도 없는 백색만이 가득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극장 내부가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독일 구겐하임 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초상’은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부인의 초상이다. 16세기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를 19세기에 런던 마담 투소 박물관에서 밀랍인형으로 제작했고 그것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한 장의 사진안에는 16세기, 19세기 그리고 21세기의 ‘재현의 기술’이 중첩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처럼 보이는 이 사진들이 실제 그들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클리브스 앤의 경우, 헨리 8세가 그녀의 초상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가 실물을 보고 실망해 결혼생활 6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다. 헨리 8세가 반한 초상을 바탕으로 밀랍인형을 제작했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재현의 기술’이 사실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 작업도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스기모토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들 속에서 ‘사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기 위해 다시 과거를 보자고 말한다. “예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처음, 사람이 되었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라는 작가노트의 한 마디는 날카로운 겨울바람처럼 정신이 번쩍들게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가. 관람료는 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이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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