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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데이>즐거움과 희망을 선사한 난세의 영웅 ‘류현진'
7회 2사 1루. 사력을 다한 피칭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류현진을 상대로 등장한 타자는 세인트루이스의 간판 슬러거 맷 애덤스. 비록 2-0으로 앞서고 있었지만 경기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넘쳤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한 타자만 더 상대할수 있겠나.” 류현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홈 관중들의 함성속에 류현진의 108번째 공이 포수 A.J. 엘리스의 미트에 빨려들어갔고 애덤스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이 회심의 직구가 벼랑 끝에 몰린 다저스를 구해냈다.

경기시작전부터 “5회까지만 던지겠다는 각오로 사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한 류현진은 1회부터 시속 153㎞(95마일)짜리 ‘광속구’를 뿌렸다. 평소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 완급 조절로 타이밍을 뺏는 게 주특기인 류현진이었지만 이날은 달랐다.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은 당황했고 속수무책이었다. 불안한 시선으로 류현진을 바라보던 미 현지언론은 이날의 호투를 대서특필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애틀랜타전 이후 팔꿈치 상태에 의문 부호를 남긴 류현진이 부활에 성공하며 경기를 지배했다“고 치켜세웠다. 미국 스포츠전문 케이블채널인 ESPN은 ”류현진이 애틀랜타전 이후 엄청나게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CBS스포츠도 이날 경기의 ‘영웅’으로 류현진을 꼽으며 ”류현진은 다저스가 이길 수밖에 없는 보배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류현진의 이날 승리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지난 7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3이닝 동안 안타 6개를 맞고 4실점한 뒤 조기 강판한 류현진에게 현지 언론은 ‘부상설’과 ‘루키의 한계’라는 등의 실망스런 평가를 내놓았던 터였다. 하지만 류현진은 특유의 배짱과 침착함으로 팀을 벼랑끝에서 구해냈다. 류현진은 경기가 끝난 뒤 회견에서 ”1회부터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강하게 밀어붙였다“면서 “긴장은 조금만 했다”고 말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다저스가 마치 한국 대표팀인 양 류현진과 다저스를 응원했다. 류현진은 고국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한국인 빅리거로는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기념비적인 승리이자 첫 선발승을 수확해 선사했다. 1990년대말~2000년대초 야구의 박찬호와 김병현, 골프의 박세리가 불꽃 투혼을 펼치며 당시 외환위기에 지쳐있던 국민들을 위로했듯이 이번엔 류현진이 짜릿한 즐거움과 희망을 선사했다. 류현진이 던진 것은 둘레 23cm, 무게 145g의 야구공이 아니라, 계측할 수 없는 투지와 희망이었다.

김태열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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