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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리뷰 -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죽고 죽이고 엇갈린 두 남자…두 아들에 대물림 되는 업보
몇 분, 아니 몇 초나 됐을까?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평생 단 한 번의 짧은 대면이 두 남자의 운명을 갈랐고, 그들 자식의 삶을 결정 지었다. 서로 알 길도 마주칠 일도 없었던 두 남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자유를 꿈꾸고 삶의 주인이 되길 열망했지만, 신은 그들에게 사치를 허락할 만큼 너그럽지 않았다. 자유와 지배는 오로지 신의 몫이었고, 운명은 인간에게 신의 것을 나누지 않았다. 연민과 애증, 책임감, 죄책감 따위의 것들에 예속된 삶만이 인간의 것이었고, 운명의 신은 ‘대물림’으로 가혹한 섭리를 증명했다.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두 세대에 걸친 비극적 운명을 통해 삶의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 괴물 같은 야심의 영화다. 강렬한 눈빛으로 어둡고 거칠며 극적인 인물을 주로 연기해온 할리우드 톱스타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주로 로맨스물이나 코미디에서 ‘훈남’ ‘쾌남’의 희극적인 면모를 보여줬으나 이번 작품에선 180도 변신을 꾀한 브래들리 쿠퍼의 캐스팅이 절묘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루크’(라이언 고슬링 분)의 이야기다. 그는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며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일 없는 인생’이다. 여느 때처럼 푼돈이나 쥐고자 모터사이클 곡예를 벌이던 놀이공원에서 그는 1년 전 하룻밤을 보냈던 여인 로미나(에바 멘데스 분)를 만난다. 로미나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음을 알게 된 루크는 처음으로 미래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정착하려 하지만, 안정을 바라는 로미나에겐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루크는 갓난 아들에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불우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 가진 것이 없는 형편으로는 아들을 만날 수도 키울 수도 없었다. 그는 은행 강도에 나섰다가 순찰 중 우연히 뒤를 쫓게 된 신입 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 분)의 총을 맞고 죽는다.

이제 에이버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대법원 판사의 아들이었지만 편한 길을 놔두고 말단 경찰로 인생의 첫발을 시작했다가 일약 목숨을 걸고 악질범을 사살한 영웅으로 떠오른다. 총격 과정에서의 석연치 않은 상황과 동료들과 연루된 내부비리 건으로 위기에 처하지만, 아버지의 도움과 약삭빠른 처신으로 경찰복을 벗고 법복을 입어 검사로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다. 하지만 갓난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똑같은 처지의 남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은 끝내 지우지 못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15년 후에 펼쳐진다. 에이버리는 대법원 판사였던 아버지가 죽은 후 대를 이어 검찰총장 선거에 도전해 승승장구하게 되지만, 아내와 이혼하고 십대 후반의 아들과도 불편한 관계다. 아버지를 비웃듯 비행을 일삼던 아들은 학교에서 동갑내기 소년을 꼬드겨 어울리다 경찰에 잡힌다. 에이버리는 상대 소년의 정체를 알고 혼란에 빠진다. 소년은 에이버리가 죽였던 루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두 남자는 각자의 방식대로 자유롭고 싶었고, 그들의 여인들은 안정을 희구했다. 그래서 여자와 헤어진 남자들은 연민, 의무, 죄책감 같은 번뇌 속에서 살고 또 죽는다. 산 자는 아비가 되고, 아들대에서 대물림되는 ‘업보’를 지켜본다. 온기를 품는 듯하다가도, 한기가 훅 불어닥치는 기묘한 공기의 영화다. 1일 개봉.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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