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테마있는 명소] 고창 선운사ㆍ도솔암①--1500년 역사 장엄한 불국토 이룬 ‘호남의 내금강’
[헤럴드경제=고창]6세기 삼국시대, 백제는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도 곤궁에 처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유민들이 대거 발생했던 서기 577년 백제 위덕왕 24년 검단선사(黔丹禪師)는 절을 짓고 도적떼를 교화시키는 한편 유민들을 모아 먹고살 방법을 찾아줬다.

3가지다. 한 무리에는 숯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고, 또 한무리에게는 닥나무로 한지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다른 한무리에는 바닷가에서 소금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전북 고창군 선운산 선운사(禪雲寺)가 창건될 때의 모습이다. 

선운사 경내. 아름다운 선운사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찾았다.

한지 만드는 사람들은 기술을 점점 발전시켜 오늘날 전주 한지공장의 모태가 됐다. 소금 만드는 장인들은 고창 앞다바 곰소만 검단마을에서 시작해 지금도 국내 최고 품질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주민은 자신들이 만든 소금을 이 절에 보은으로 보시하기에 이르렀다. 무려 1500년 가까운 세월 오늘날까지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운사하면 동백꽃을 떠올리는 이 사찰로 여행을 떠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운산도립공원으로의 여행이다. 절 뒤 산비탈에 병풍 처럼 줄지어 빨갛게 꽃피우는 동백의 아름다운 경치를 연상하면서...남방계 식물인 동백꽃은 이곳에서 북방한계선에 맞닿아 최북단 자생지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필자는 30여년 전 절 뒷산에 올라 변산반도를 봤던 가물가물한 기억 하나만을 더듬으며 다시 선운사를 찾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것 외에는 선운사에 대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선운사는 창건 이후 번창했을 때 무려 89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했다는 기록(선운사 보존 사적기)이 전해질 정도로 큰 절이었다. 국내 최대 가람으로 한때 불국토(佛國土)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로 전라북도 고창, 부안, 정읍, 순창, 임실 등 6개 시군에 말사(末寺)를 두고 있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선운사로 가는 길.

필자 처럼 일반여행자의 입장에서 선운사는 뭐니뭐니 해도 아름다운 경치를 품은 선운산도립공원 내의 대규모 사찰이라는 의미와 강학과 수선의 도량, 일제시대 한국정통불교문화를 사수해온 사찰이자 한국 근대문학의 씨앗을 뿌린 곳임을 염두에 두고 따라가 보면 좋을 듯 하다. 보고 느낄게 많은 사찰이다.

3월 마지막 주말 오전 9시 조금 넘어 선운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관광안내소에 들렀다. 여기서 강신교 해설사 선생님과 일본어 통역사 나구모 도모코(南雲智子) 선생님을 만나 이 고장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강 선생님은 절을 비롯 도립공원 명소를 두루 관광하는데 3시간 걸리는 코스 투어에 선뜻 동행해 주시겠다고 했다. 선운산은 대략 4가지 코스로 등반할 수 있는데 3시간 코스가 가장 짧지만 중요한 명소가 여기에 몽땅 포함돼 있어 가볍게 둘러볼 사람들에겐 제격이다.

여기서 선운사까지는 약 800m, 넓고 평평해 누구라도 걷기 좋은 길이었다. 출발선에서 만난 기이한 나무 한 그루. 내천 건너 큰 암벽에 바짝 달라붙어 자라는 푸른 잎의 나무가 퍽 인상적이었다. 마치 벽화 같기도 하고 식물박제 같기도 했다. ‘송악’이라고 했다. 키가 18m에 이르는 이 송악은 선운사 3대 천연기념물 중 하나다.

송악. 넝쿨식물로 바위에 바짝 달라붙어 자란다. 고창이 생육 가능한 북방한계선이다.

송악은 서남해안지역에 자생하지만 식물생태적으로 이곳 고창이 북방한계선이라고 했다. 선운산도립공원 자체 식물분포가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식물종류가 유난히 많다고 했다. 송악은 드릅나무과 상록 덩굴식물이다. 소나 염소들이 잎을 잘 먹어 소밥나무라고도 부른다.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 도중에 길 양편에 보리 처럼 새파랗게 난 식물들이 천지에 깔렸다. 선운사 주변에 많이 자생하는 꽃무릇이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잎이 푸르게 났다가 지는데 그 후 흔적없이 사라졌다 9월이 되면 다시 빨간꽃이 온 천지를 뒤덮는다. 약 20일간 꽃피는 시기 전국에서 사진작가 3000명이 모인다고 했다. 

그런데 이 식물이 사찰에 대단한 역할을 한다. 단청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뿌리에서 녹말성분을 채취해 단청에 사용한다는 것. 그래서 단청 전문가들이 유독 이 고창 주변에 많이 있다고 한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서로 그리워한다’고 해서 상사화라고도 한다.

길을 재촉하니 미당 서정주의 시비(詩碑)가 나왔다. 서정주는 이곳 고창 출신으로 젊은시절 선운사에서 공부를 했다. 비석 정면에 ‘선운산가비(禪雲山歌碑)’라고 새겨져 있다.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전해오는 백제의 5개 가사 중 하나다. ‘도솔가’라고도 한다. 내용은 정확히 전해지지 않지만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쪽 측면에는 미당의 ‘선운사의 동구(洞口)’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선운산가비

시비 옆 광장 만큼 넓은 땅 가운데 선운사 일주문이 서 있다. 그런데 현판은 ‘도솔산선운사’로 돼 있다. 이 산이 선운산이지만 스님들 세계에선 도솔산으로 불리고 있어서다. 도솔(兜率)은 도솔천(兜率天)의 준말로 불교에서 ‘열반한 스님이 미래의 미륵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하늘궁전’을 뜻한다.

2~3분 걸어가니 길 오른편 전나무숲 안쪽에 부도전이 나왔다. 무관심 속 평범해 보이는 부도지만 이 중 하나 꼭 관심있게 봐야 할 부도가 있었다. 중간쯤에 자리한 ‘화엄종주백파대율사(華嚴宗主白坡大律師) 대기대용지비(大機大用之碑)’라고 쓰인 부도다. 국가 지정 보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만큼 귀중하다는 백파 스님 부도인데 추사 김정희가 글을 직접 썼다. 그의 힘찬 붓글씨의 기교를 감상할 수 있는데 추사 개인적으로도 명작으로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이다.

추사 김정희의 말년 힘넘치는 필체.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백파스님을 극찬한 비석으로 앞면(왼쪽)과 뒷변의 글씨들이다.

조선시대는 억불숭유정책이 강했고 왕실 가문 출신의 추사는 암행어사,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두루 거친 정통 선비인데 어떻게 불교의 울타리로 들어왔을까. 당시의 관점에서는 대사건이었다. 조선말기 3대 명필가이기도 한 추사는 처음엔 백파 스님을 업신여기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의 9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백파 스님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추사는 단순히 글만 써준게 아니라 비문의 내용까지 직접 지어서 써준 것으로 당시 선비사회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백파 스님은 ‘선문수경(禪文手鏡)’을 지으면서 해남 대흥사의 초의 스님과 뜨거운 ‘선(禪)’ 논쟁이 붙었다. 이 와중에 추사도 초의의 편에서 백파 스님을 공격했다. 그들의 논쟁은 서한으로도 끝없이 이어졌지만 결국 유배생활을 하면서 추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백파 스님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 글씨는 추사가 사망하기 1년전 글이라고 하니 추사체의 결정체가 담긴 작품이라 해야겠다. 이 비문은 많은 사람들이 탁본을 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자칫 그냥 놓칠 수도 있었을 조선 최고 명필가의 ‘명작’을 감상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탁본 대신 사진으로 찍어온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부도전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선운사가 나타났다. 천왕문 현판이 눈길을 끈다. 추사와 함께 조선후기 3대 명필가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썼다고 한다. 이광사의 글은 물 흐르듯 쓴 글씨라 해 ‘원교유수체(圓嶠流水體)’라 불렸으며 독자적인 서체영역을 구축해 후진도 많이 양성했다고 한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도 이광사의 글씨로 유명하다.

(내용 ②편에 계속)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천왕문.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로 큰 의미를 지닌 현판이다.

…………………………
■ 고창(高敞)은? : 전북 서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설창(雪敞)이라고도 부른다. 노령산맥의 영향으로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서 붙은 이름이다.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고장이라고 한다. 선운산도립공원은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사계절 관광지로 부상했다. 어느 계절 하나 건너 뛸 수 없는 경치를 자랑한다.

선운사에는 보물도 많다. 금동보살좌상(제279호), 지장보살좌상(제280호), 선운사 대웅전(제 290호), 참당암 대웅전(제 803호), 도솔암 마애불(제 1200호) 등 즐비하다. 천연기념물로는 동백꽃과 송악, 장사송이 있다.

고창군의 3대 특산물로는 복분자, 풍천장어, 작설차가 전국 최고의 품질로 사랑받고 있다. 봄 청보리축제에 이어 복분자축제, 수박축제, 메밀꽃축제 등 축제만 해도 매달 한 번씩 있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고장이다.

■ 선운산 등산코스

△제1코스: 관리사무소--선운사--구자연의 집--장사송, 진흥굴--도솔암--마애불상--용문굴--낙조대--천마봉(편도 4.7km: 약 1시간30분 소요)

△제2코스: 관리사무소--일주문--석상암--마이재--수리봉--포갠바위--참당암--소리재--낙조대--천마봉(편도 6.1km: 약 2시간30분)

△제3코스: 관리사무소--경수산--마이재--수리봉--포갠바위--참당암--소리재--낙조대--천마봉(편도 8.6km: 약 3시간30분)

△제4코스: 관리사무소--구자연의 집--도솔제--투구바위--사자암--쥐바위--청룡산--배맨바위--낙조대--천마봉(편도 8.3km: 약 5시간)

*천마봉서 바로 하산시 관리사무소까지 거리는 내리막 5km(약 50분) 거리이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