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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호의 전원별곡] 제4부 자연과 사람(18)신지용 지용한옥학교 대표 “강사진 · 교과과정 최고 자부… ‘한옥메카’ 조성이 궁극적 목표”
강원도 산골의 겨울은 어찌 보면 정지된 시간이다. 워낙 춥고 눈도 많이 내리는 지라 한겨울엔 차도,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절기상 우수(18일)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강원도의 겨울은 여전히 춥다.

지난 21일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에 위치한 지용한옥학교를 찾았다. 산골의 폐교(구만분교)를 리모델링한 이 한옥학교 역시 조용히 겨울 휴지기를 보내고 있다. 총 8,600㎡(2,600평) 규모의 학교 부지 안에는 학교건물을 개조한 강의실과 숙소, 그리고 대형 치목(治木)실습장 등의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치목장 내 잔뜩 쌓여있는 목재와 고재(옛 한옥에서 철거해온 목재), 그리고 각종 기계장비들은 곧 다가올 봄에 자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줄 목수 지망생들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조용히 감내하고 있다.

#인연과 꿈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강원도 산골 또한 폐교(초등학교)가 많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젊은 층이 대거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산골마을 분교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이런 폐교를 다시 대표적인 한옥학교로 부활시킨 ㈜한옥과 문화의 신지용(49) 대표는 “이곳에 지용한옥학교를 세운 것도 정말 인연인 것 같다”며 말을 꺼냈다.

 
신지용 ㈜한옥과 문화 대표

“처음 한옥학교와 회사를 세우기로 하고 대상지를 찾으러 다니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지요. 다른 지역과 기관에서의 권유와 지원을 정중히 거절하고 굳이 강원도로 정한 것은 친환경 주택인 한옥, 그리고 한옥학교의 입지는 소나무 등 산림자원이 풍부한 강원도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09년 가을, ㈜한옥과 문화와 부설 지용한옥학교는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옛 구만분교 자리에 문을 열었다. ㈜한옥과 문화는 비단 지용한옥학교 운영 뿐 아니라 21세기 한옥의 대중화를 위한 R&D사업과 컨설팅, 그리고 지역 환경에 맞는 한옥 건축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곳에 터를 잡을 때부터 신 대표는 줄곧 한 가지 꿈을 키워왔다.

“낡은 학교를 현대한옥으로 리모델링하고,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한옥 관련 도서와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을 한 곳에 모아 누구나 편리하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한옥도서관을 세우고 싶어요. 곧 한옥의 메카이자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하지만 그의 가족 내력을 들여다보면 이는 단지 꿈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다.

 
지용한옥학교와 정자 남가헌

#한옥가족의 힘

모든 배움의 전당이 다 그렇듯이 한옥학교 역시 제자를 길러내는 스승의 역할과 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하다. 지용한옥학교의 신영훈 교장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성이 높은 ‘한옥 건축의 대가’로, 신 대표의 아버지다. 그는 한옥건축 감독관이다. 가끔 대목수(도편수, 한옥의 기둥·보·지붕 등 골격을 짓는 사람)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호(號)가 ‘목수(木壽)’인 까닭이다.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한옥대가에게 딱 어울리는 칭호다.

신 교장은 남대문(숭례문)과 경주 토함산 석불사, 송광사 대웅보전 중수 공사 감독관을 맡았고, 보탑사 삼층목탑을 신축하는 등 수많은 사찰과 한옥건축을 감독했다. 특히 해외에 한옥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등 ‘건축 한류’의 씨앗을 뿌린 개척자이다. 실제 그는 덴마크 국립박물관 백악산방(사랑방), 영국 대영박물관 한옥사랑방, 프랑스 파리 고암서방 등의 건축을 감독했다. ‘한국의 살림집’, ‘한옥의 미학’, ‘우리한옥’ 등 한옥 관련 저서 또한 10여권에 이른다.

신 대표의 남편 또한 지용한옥학교의 핵심 강사이다. 바로 국립 강원대의 김도경 교수(건축학)다. 김 교수는 한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10여 년간 한국목조건축의 실무에 직접 종사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한옥 전문가로 통한다. ‘한옥살림집을 짓다’, ‘우리건축 100년’,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신 대표 또한 미술사-건축사를 전공하고, 현재 한옥회사와 한옥학교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신영훈·신지용·김도경 이들 3인은 한옥에 관한 한 ‘일가(一家)’를 이룬 셈이다.

 
학생실습으로 지은 목수정사

여기에 이광복(도편수, 대목장기능보유자, 한옥의 골격 시공), 심용식(서울시 무형문화재 소목장, 성심공예원 대표, 창호 제작), 유문용(한국문화재보수기술자협회 상임이사), 김현태(현건축사사무소 소장), 정정남(경기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학교 강사진의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줄곧 겸손해 하던 신 대표도 이 대목에선 “우리 지용한옥학교의 강사진과 교과과정은 최고수준”이라고 자랑한다.

#성과와 보람

‘한옥의 메카’를 꿈꾸는 지용한옥학교 안에는 현재 학생들이 실습을 하면서 지어놓는 3칸의 작고 단아한 한옥 ‘목수정사(木壽精舍)’와 정자 남가헌(南架軒)이 있다. 남가헌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 공존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 갈 수 있는 누마루와 신발을 벗지 않아도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학생실습을 통한 한옥 관련 건축은 지역사회 기여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학교 소재지인 구만리마을의 디딜방아간을 무료로 재건축해주었고, 얼마 전에는 자매결연을 맺은 이웃동네인 서면 팔봉2리(청삼골 돌배마을)의 농촌체험교육장과 11사단 내 화랑사의 정자를 학생실습으로 지어줬다.

“이렇게 학교와 지역주민이 힘을 합쳐 주변에 하나둘 한옥이 생겨나다 보면 물 맑고 산 좋은 이곳에 한옥을 주제로 한 문화벨트가 자연스럽게 조성되지 않을까 합니다.”

 
운동장에 들어선 대형 치목실습장

지용한옥학교는 젊은 건축학도들의 한옥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국내 대학의 학부과정에서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교육은 고작 한국건축사 한 과목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국건축을 공부하고 싶은 학생은 대학원에 가서야 비로소 몇몇 한국건축전공 교수 밑에서 배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실정이다.

지용한옥학교는 2주간의 여름한옥캠프기간 동안 학생들에게 한옥전반에 대한 이론 강의는 물론 답사와 실습을 통해 한옥을 익히고 본인들이 꿈꾸는 한옥을 설계해 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여름한옥캠프에 오는 학생들을 보면 언제나 젊음의 열정이 넘쳐나요.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짜내고 합의점을 찾아내 설계를 완성시키는 걸 지켜보노라면 절로 흐뭇한 마음이 들어요. 이들에게 한옥의 대중화, 세계화의 주역이 되겠다는 꿈을 심어주는데 큰 보람을 느낍니다.”

#새로운 과제와 도전

그러나 새 봄을 기다리고 있는 지용한옥학교의 앞길이 순탄한 것 많은 아니다. 이곳을 한옥의 메카이자 지역의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신 대표의 꿈을 가로 막는 적지 않은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먼저 제대로 된 전통한옥건축 교육을 실시하기엔 둘러싼 주변 환경이 척박하다. 지용한옥학교에선 전체 8개월 과정으로 한옥의 전통양식과 기법을 이론과 설계, 실습을 통해 배우는 기초반과 한옥을 직접 짓는 심화반을 운영하고 있다.

 
옛 한옥에서 철거해온 목재(고재)

“이보다 짧은 과정은 사실상 기본교육 조차 어렵기 때문에 교육의 질적 저하를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국비 지원이 되는 한옥교육 과정은 3개월 혹은 4개월짜리여서 부실교육이 우려됩니다. 수강생 모집도 국비지원 과정에만 쏠려 애로를 겪고 있지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신 대표는 지용한옥학교의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지역과 연계된 실습과정을 운영함으로써 교육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또한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한옥을 배우기 위해 오는 경우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학점은행제가 적용되는 평생교육원으로 전환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와 함께 향후 일반인을 위한 워크숍, 주말반, 취미반 등을 개설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신 대표의 야심찬 한옥메카 조성계획 또한 그리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의 지용한옥학교 부지는 임차한 것이어서 각종 시설물을 건립하는데 많은 제한이 따른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학교 부지를 불하받아 새 한옥학교와 한옥도서관 등을 건립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강원도의 기나긴 겨울을 몇 차례 넘기다 보니 새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난한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지요. 지금까지 지역의 발전과 우리 전통 한옥의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 애써온 만큼 순리대로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만, 이를 민간에만 내맡겨 두기 보다는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헤럴드경제 객원기자, 전원칼럼리스트,cafe.naver.com/r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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