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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있는 명소] 최초 고갯길 하늘재, 그리고 미륵리사지ㆍ덕주사--망국의 恨 달래다
[헤럴드경제; 충주=남민 기자]무려 1850년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하늘길’ 하늘재 탐방에 나섰다.

하늘재(525m)는 삼국사기와 신라본기에 기록될 만큼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고갯길로 역사적인 의의가 큰 길이어서 꼭 탐방을 가기로 맘 먹었던 터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재’란 의미로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서기 156년 신라 아달라이사금왕이 중원지역으로 진출키 위해 개척한 고개다. 당시에는 계립령(鷄立嶺)이라 불렀다. 계립령은 고구려 온달장군이 이 땅을 회복하려 나섰다 전사한 유서깊은 길이다.

아침 일찍 수안보에서 미륵리로 향하는 고갯길 지릅재엔 눈이 제법 쌓였다. 12월 초, 월악산엔 계속 간간이 눈이 흩날렸다. 이러다 혹시 탐방 도중 악천후라도 만나는건 아닐지 은근히 걱정이 스쳤다.

 
하늘재 정상 탑. 가까운 쪽이 충주, 저 앞쪽이 문경이다.

탐방은 오전 10시쯤 미륵리사지 주차장에서 시작했다. 눈발이 점점 기승을 부렸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박영미 해설사가 동행했다.

하늘재는 월악산국립공원 내 포암산(962m)과 탄항산(857m) 사이에 있다. 경북 문경시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미륵리의 경계선을 잇는 백두대간의 고갯길로 지금도 당시의 길 거의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두 마을간 이름도 재밌다. 관음리와 미륵리다. 박 해설사는 “결국 하늘재는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너머 마을엔 관음사가 있고 반대편엔 미륵사가 있었던 것.

우연일까, 필연일까. 통일신라가 문을 닫고 고려시대가 열리면서 신라 마지막 왕(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 고개를 넘어 미륵리로 들어왔다. 서라벌에서 금강산으로 가려면 그냥 동해안으로 가면 될 일인데 왜 이 길을 걸었을까.


수안보쪽 지릅재서 바라본 하늘재. 저 멀리 왼쪽의 포암산(962m)과 오른쪽의 탄항산(857m) 사이의 움푹 내려간 부분이 고갯길 정상이다.
하늘재

마의태자는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신라 부흥의 꿈을 안고 떠나던 중 문경 마성면의 계곡 깊은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그날 밤 마의태자는 관음보살을 만나는 신기한 꿈을 꾸었다. 관음보살이 왕자에게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우고 그 곳에서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이루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으리니 포덕함을 잊지말라”고 말했다.

마의태자의 신기한 꿈은 놀랍게도 같은 시각에 공주도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 남매는 다음날 서쪽을 향해 고개(계립령)를 넘어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석불입상을 세우고 별빛을 받고 있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했다. 이것이 미륵사와 덕주사다.

덕주사 마애불 앞에서 만난 한 수도스님은 기자에게 “여기 마애불에서 매일밤 같은 자리에 뜨는 북두칠성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걸 볼 수 있다”며 “기자님도 꼭 한번 보시라”고 권한다. 나는 “스님께서 절에서 하룻밤 재워주시면 꼭 보고싶다”고 응수했다. 또 한번 올 기회를 ‘예약’한 셈이다.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월악산 최고봉인 영봉 아래 웅장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덕주공주는 월악산 최고봉 영봉 아래의 이 덕주사에 머물며 미륵리 석불입상과 서로 마주보는 불상으로 망국의 한을 달랬다. 미륵리의 입상석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향해 있는데 그 방향이 영봉 아래 덕주공주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 영봉 아래 웅장하리 만큼 큰 바위에는 덕주공주를 의미하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미륵리 석상이 북쪽으로 향한 또다른 해석도 있다. 왕건이 고려를 열면서 지방호족의 민심을 사려 이 절을 세웠으며 고구려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북쪽을 향하게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하늘재 입구에 있는 미륵리사지. 석등 사이로 미륵리입상석불의 얼굴을 보며 소원도 빈다.

미륵리사지는 대규모 절터로 희귀한 문화재가 많다. 6장의 연화무늬를 가진 당간지주가 있는데 연호무늬는 경주 보문사와 이곳 두곳 뿐이다. 또 거북모양의 거대한 비석받침돌이 북쪽을 향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 귀부에는 어린 거북이 2마리가 어미 몸 위로 올라가는 그림도 새겨져 있어 마의태자와 왕건에 관한 전설을 추측케 하고있다.

덕주사 관음전

훗날 오빠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지만 덕주공주는 덕주사에 남아 애틋한 남매 마저 이별한다. 지금의 덕주사는 마애불이 있는 위쪽이 상덕주사, 그리고 아래쪽에 하덕주사로 떨어져있다. 주변경치가 절경이다. 하늘재 탐방은 망국의 한을 품고 길을 떠나온 태자와 공주의 흔적을 더듬어 미륵리사지와 덕주사를 연계해서 둘러보면 제격이다.

하늘재는 고려때까지 활발한 통로로 이용됐지만 조선조 태종 이후 영남대로 개척으로 이웃에 문경새재가 새로 열리면서 주로 스님과 서민들이 넘던 고개로 명맥을 잇게 된다. 새 길이 생기면서 신분에 따라 길을 달리 했다.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양반은 문경새재로, 스님과 중인, 상인들은 하늘재를 이용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서민적인 길로 남아 백성들의 온갖 애환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재 정상. 아스팔트 길을 경계로 이쪽은 경북 문경시 관음리, 흙길부터는 충북 충주시 미륵리다. 현세와 내세의 갈림길이다.

이 숲속 옛길은 폭이 대략 3m 정도로 잘 조성돼 있다. 미륵리에서 정상까지는 흙길 그대로이고, 반대편 관음리 쪽에선 정상부근 마을이 있어서 아스팔트길이다. 이 현세와 내세의 고갯길은 정상에서도 이렇게 또렷이 갈린다. 아스팔트와 흙길이 경계선을 긋고 있다. 그래서 탐방은 미륵리에서 정상까지 걸어서 다녀오는게 좋다.

넉넉 잡아도 2시간이면 충분할 탐방길은 걷기에 편했다. 걷기운동이 열풍인 요즘 옛 의미를 되새기며 이 산길을 걷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 싶다.

미륵리에서 중간 쯤 올라가면 ‘김연아 소나무’도 나온다. 마치 김연아 선수가 스핀을 도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탐방객이 붙인 이름인데 팻말까지 붙여 관리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김연아 소나무.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하는 모습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으로 특별히 관람데크도 만들었다.

내려오는 길에 장년의 부부가 애완견을 앞세워 하늘재를 올라오고 있었다. 순간, 박영미 해설사가 앞을 막고 서서 “국립공원에 애완견 출입은 안됩니다. 죄송하지만 내려가 주셔야 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요청한다. 뜻밖의 장면을 본 기자 조차 약간 당황스러웠다. 부부는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만 봐달라”고 맞선다. 박 해설사도 단호했다. “안됩니다. 생태계 교란 우려도 있기 때문에 내려가 주십시오” 라고 해서 결국 돌려보냈다.

우리의 월악산국립공원을 이렇게 세세하게 관리하는 직원들이 있어서 잘 보존되고 있음을 오늘 목격한 순간이었다. 뿌듯했다.

하늘재는 명승 제 49호로 지정돼 있다.

글ㆍ사진=남민 기자/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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