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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 - 정용덕> 또 물건너간 정책 선거
한달 반도 채 남지않은 대선…
후보들 경쟁적 공약 발표 불구
재원 근거·공약 충돌 큰 문제
집권 후 구체적 청사진도 실종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다음 정부의 국정 운영도 파란만장할 것이 틀림없다. 선거일이 한 달 반이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도 유력 후보일수록 그들이 집권했을 때 펼치게 될 국정 운영의 전체 청사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며칠 전부터 경쟁적으로 공약을 남발하고들 있으나, 전후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거나 공약 간에 서로 충돌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앞뒤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공약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번 대선의 유력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내세우고 있는 복지 증대 정책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제시하는 하나하나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각각 얼마의 재원이 필요하며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후보들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의 후보가 서로 역관계(trade-off)에 있는 공약들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예로는 방문하는 지역 혹은 만나는 이익집단마다 그들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줄 것처럼 약속하고 다니는 경우들이다. 이로 인해 그 후보가 집권했을 때 또 얼마나 많은 공공 갈등이 초래될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고 상충적인 공약들이 넘쳐나고 있어 자신이 집권했을 때 추진하겠다는 국정과제와 그것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국정 능력 간의 심각한 괴리가 나타나고 있다.

후보들이 내세우고 있는 공약들을 모두 추진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그것을 추진할 국정 능력이 필수적이다. 유력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국정 운영 시스템을 분권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행정부에서 국회로,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와 각 부처로, 각 부처에서 산하 공공기관으로,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권력을 각각 분산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에게 집중된 엄청난 권력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약속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분권화가 가능해지려면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우선, 가급적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 정부는 사회질서 유지 등의 기본적인 일만 하고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시장과 시민사회 부문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도록 위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요건은 지금 후보들이 제시하는 이런저런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그것도 장기 집권을 통해 정부 주도로 밀어붙였던 수준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국정과제들을 ‘5년 단임제 대통령’이 해내겠다는 사실상의 허황된 약속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요건은 분권화가 되는 그만큼 정부와 민간부문 간에 그리고 각 부문 내부의 조직이나 집단 간에 횡적 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일을 거치면서 다원화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자율적인 ‘상호조정(mutual adjustment)’이 이뤄지기에는 우리나라의 정책 조정 문화가 아직은 성숙해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약속하고 다니는 몇 개 부처나 위원회의 부활 혹은 신설은 정책 조정 능력을 더욱 저하시킬 것이다. 정부가 ‘다수 부처’ 체제로 조직화되는 경우에 전문성은 높아지지만 통합성, 즉 조정 능력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기구 수를 늘리는 그만큼 ‘큰 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재원 조달의 필요성에 더해 위로부터의 하향적 조정 또한 더 필요해질 것이며, 이는 권력의 분권화가 아니라 오히려 집권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마당에는 선거 일정이 ‘44일밖에 안 남았다’고 아예 포기하기보다는 ‘아직 44일이나 남았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그래도 낫다. 이제부터라도 국민 모두가 후보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그리고 공약의 인과관계와 상충성 여부를 눈을 부릅뜨고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실패한 대통령’을 방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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