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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습부진ㆍ태도불량 김 군, 문제는 ‘뇌’ 에 있었다
[헤럴드경제= 박수진 기자]서울 A중학교 2학년 김준수(15ㆍ가명)군은 수업시간이 늘 고통이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겨워서다. 자신도 모르게 일부 내용을 건너 띄고 다음 줄을 읽었다. ‘사랑합니다’라는 단어는 ‘사랑’ ‘합’ ‘니다’는 식으로 따로 떨어져 읽히는 통에 전체 의미 파악이 어려웠다. 수업만 시작하면 졸음이 밀려와 책상에 엎드리거나 턱을 괴기 일쑤였다. 수업 시간마다 ‘자세를 똑바로 하라’는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부 자체에 흥미가 떨어졌다.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 군의 학습부진과 태도 불량의 궁극적 원인은 뇌에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내용이 뇌로 전달이 잘 되지 않았던 것. “두뇌와 눈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 글을 읽어도 뇌에 의미가 전달되지 않으니 학습 능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니 수업시간에 집중도 할 수 없었다. 


서울시교육청이 HB브레인연구소와 함께 관내 초ㆍ중등생 805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 군처럼 신경생리학적 원인에 따른 학습 부진으로 훈련이 필요한 학생들은 374명에 달했다. 시교육청과 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수업을 이용해 1회당 80분씩 매주 4회, 총 40회에 걸쳐 ‘시지각훈련’ 을 진행했다.

눈으로 보는 것을 뇌로 정확히 전달해 이해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안구 조절 및 초점 맞추기 형식이다. 예를 들어 ‘ABCDE’라는 알파벳 나열을 제시하고 컴퓨터 화면에 무작위로 쓰여진 40여개의 알파벳 중에서 순서대로 해당 나열을 찾게 한다. 또 특수 안경을 쓰고 안구를 벌리고 오므리는 훈련을 통해 안구 초점을 조절하는 법을 훈련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실태조사 결과 눈으로 본 글자를 지각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난독증’ 고위험군에 속했던 초등생은 전체 100명 중 9명 꼴이었는데 훈련 이후 모든 학생들이 고위험군에서 벗어났다. 읽기 능력 고위험군에 속한 학생들도 초등생이 전체 17%에서 7%로, 중학생은 20%에서 9%로 크게 감소했다. 


학교생활 적응도와 학습 능력면에서도 개선 효과가 컸다. 주의력결핍이나 과잉행동으로 학교 생활이 어려운 위험군에 해당하는 초등생이 전체 42%에서 13%로, 중학생이 21%에서 10%로 크게 줄었다. 학습 효율이 떨어지고 자주 피곤을 느끼는 학생들도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학습 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해 10월부터 1년 동안 시지각훈련 학습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 숭인중학교에서는 이같은 개선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훈련을 받은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몰라보게 달라지고 학습에 대한 흥미와 의지도 높아진 것.

중학교 1학년 내내 수학 과목 ‘하’반을 맴돌던 이민호(15ㆍ가명)군은 훈련 이후 ‘중’반으로 진급 했다. 교사가 제시하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물론 스스로 유사한 문제를 만들어 보는 응용능력까지 강화됐다. 수업 태도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김남희(42ㆍ여) 숭인중 수학 교사는 “얼마 전에는 ‘이젠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온다’고 스스로 말하더라. 성적이 오른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의지를 키우고 수업시간에 흥미를 갖게된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올 해 6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관내 초ㆍ중학교 35개교, 490여명을 대상으로 시지각훈련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내년도에는 예산을 추가 확보해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주소연 시교육청 책임교육과 장학사는 “아이들의 학습 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나치게 학습적 요인에만 집착해왔다. 신경생리학적 요인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만큼 이러한 프로그램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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