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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인이 본 조선 강제징용의 참상
6ㆍ25의 상처와 고통을 글쓰기로 고스란히 복기해낸 박완서의 문학은 증언문학의 금자탑을 이룬다. 무자비한 전쟁의 한가운데서 목숨들을 이어가는 인간 본능의 부딪힘을 깊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그의 증언문학은 역사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의 의지, 기록으로서의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민족에게 가혹했던 일제시기, 노예ㆍ짐승과 다름없었던 징용의 시절을 다룬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건 좀 아쉽다.

하하키기 호세이의 소설 ‘해협’(나남)은 조선 강제징용의 참상을 일본인의 눈으로 그려냈다는 점에 우선 놀랍고, 문학적 성취에 다시 한 번 눈이 크게 떠진다. 소설은 1943년 가을, 아버지를 대신해 탄광 노동자로 강제 징용된 17살의 하시근이 겪은 이야기와 40년 만에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는 하시근의 시선이 나란히 가면서 탄탄한 구조물을 짜나간다.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배의 밑바닥에 쇠줄을 찬 채 하얀 새떼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징용된 조선인, 낙반 사고로 머리가 으깨어지고, 옥수수가루와 밀이 섞인 한 끼의 밥, 탈출을 시도하다 밤새 몽둥이의 먹잇감이 된 핏빛 갱내 모습은 잔혹한 누아르 영화보다 더하다. 사료보다 더 적나라하고 생생한 묘사지만 작가의 시점은 어느 한곳에 서 있지 않다. 갱내 징용자들, 마을 사람들, 일본인 감독 야마모토, 한국인 대장의 목소리를 통해 자기성찰적 모습을 보여준다. 정신과 의사 출신답게 하하키기 호세이의 시선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 익숙하고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듯하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의 구수하고 찰진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번역은 이 작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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