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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단한 밥벌이…애달픈 인생 그리다
일 있는 사람은 복되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노동이 우리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일 때문에 괴롭다. 소설가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밥벌이의 지겨움’은 입 달린 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고난이다.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직업의 광채’(홍시)에서 이들 소설을 한데 불러모은 주제는 ‘일’이다.

줌파 라히리의 데뷔작이자 2000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병을 옮기는 남자’는 삶의 고단함이 잔잔히 묻어난다. 관광가이드이자 병원 통역 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주인공의 무던한 삶에 어느 날 돌멩이가 날아든다. 어느 관광객 부인의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와 관심이 “실패한 인생의 낙인” 같았던 삶에 의미를 부여한 듯 그를 한껏 부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때 그는 그 “통속적이고 하찮은 비밀” 앞에 망설이고 주저하게 된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은 싸늘한 침묵과 거절의 눈빛으로 돌변하고, 그녀의 환대에 기대었던 그의 자존감도 자괴감으로 곤두박질하고 만다.

애니 프루의 ‘직업의 이력’이 띠는 광채 역시 서늘하다. 가난한 목장 노동자에서 주유 보조, 유조차 운전수, 건설노동자로 떠도는 주인공의 삶. 이 ‘직업의 이력’은 ‘실패의 이력’에 가깝다. 하지만 ‘실패의 이력’에선 어떤 통곡도 비명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인과관계가 덤덤히 묘사될 뿐 건조한 문장이 전하는 세상의 무정함에 소스라치게 된다.

옮긴이의 표현처럼 이 책은 “상투적인 미소가 애처롭게 굳어지고, 꿈이 해체되고,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상처받고 버림받는 순간들을 담았다.” 이 던적스러운 삶의 풍경, 그러나 도리 없이 아등바등 견뎌야만 하는 상처의 풍경이 애달프다. 그리고 이내 밥벌이에 지친 이들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를 건네고 싶어진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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