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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 돌아온 우리의 소리, 신명나게 풀어볼까
53개국 해외공연 마친 ‘월드비트 비나리’ 종로 전용관서 오픈런…사물놀이서 민요까지 다양한 장르 결합 비언어극의 진수 선보여
한 소녀가 소금을 들고 환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뒤에서 등장했다. 피리 소리와 함께 나비가 춤을 추고 소녀가 사뿐히 딛는 걸음을 따라 날개를 팔락거리며 오묘한 소리와 함께 무대까지 날아왔다.

생황 소리는 가슴을 울리고, 북 소리는 가슴을 뛰게 했다. 17년 만에 서울 땅을 밟은 ‘월드비트 비나리’는 대한민국의 문화관광상품으로 자리잡은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의 유행에 막차를 탄 느낌이지만 넌버벌 퍼포먼스가 갈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시했다.

▶‘월드비트 비나리’가 전한 국악의 가능성=‘월드비트 비나리’는 서울 종로 시네코아 2관에서 오픈런(공연기간을 확정하지 않고 지속 공연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난타’ ‘점프’ ‘비밥’ 등의 넌버벌 퍼포먼스 공연에 이어 ‘월드비트 비나리’도 종로에 전용극장을 마련, 국내 관객과 함께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우리 문화 알리기에 새로운 깃발을 꽂았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신규공연관광콘텐츠육성사업’의 전용극장 대관 등을 지원받았고, 상설 및 장기 공연이 가능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일조할 전망이다.
 
난장에서 펼쳐지는 민속놀이를 극장으로 옮긴 것과 같은‘ 월드비트 비나리’ 공연 장면.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며 신명나는 한마당을 만들어간다.                                                                                              [사진제공=아담스페이스]

우리 음악을 중심으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월드비트 비나리’는 북과 사물놀이 위주의 타악 연주, 가야금ㆍ거문고ㆍ피리 연주, 판소리, 민요와 함께하는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다. 국악의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구성돼 있어 관객 입장에선 다양한 국악기와 우리 노래가락을 한데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비나리’란 소원을 빌어준다는 의미. 공연 내내 관객에게 복을 빌어주는 이 공연은 성공기원, 사랑기원, 건강기원의 3개 테마로 나눠졌다.

여는마당으로 시작해 ‘열고(Opening Drum)’에선 5개의 대북이 심장박동과 함께 뛴다. 경쾌한 태평소 소리와 ‘뱃놀이’를 하다 보면 사랑노래 ‘상사몽’이 이어진다. 모든 힘을 다 뺀 듯 생황의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노래와도 잘 어우러진다. 격한 북소리로 마무리하는 공연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영어ㆍ일본어ㆍ중국어로 제목과 가사를 소개하는 배려를 더했다.

‘월드비트 비나리’엔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불교의 범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바하’란 곡은 이 공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

문갑현 들소리 대표는 “장독이나 물가에 여인네가 초를 켜고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어릴 적부터 많이 봐오던 모습이었다”며 “연극은 대립이 있고 어두운 소재가 들어가 갈등 해소와 해피엔딩이 위주가 되지만, 이 작품은 내가 소원을 빌어주며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는 근본적인 행복을 고민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53개국 해외공연, 이젠 한국에서=사회적 기업 들소리가 2003년부터 10년 동안 전 세계 53개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한 ‘월드비트 비나리’는 그동안 작품명은 바뀌어 왔으나 국악으로 신명나는 한마당을 만들어간다는 기존 콘셉트는 변하지 않았다.

들소리가 처음 해외로 간 것은 1993년 일본.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시작한 건 2003년이다. 2009년 세계 최대 월드뮤직박람회 WOMEX에서 공식 쇼케이스팀으로 선정되기까지 문 대표는 인터넷으로 축제 사이트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일일이 e-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해외 공연을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보니 호주ㆍ영국ㆍ벨기에ㆍ스페인ㆍ네덜란드ㆍ미국ㆍ칠레ㆍ독일ㆍ체코ㆍ인도 등 안 가본 나라가 없다. 심지어 문 대표 자신도 팀을 따라다니며 53개국을 모두 가보지는 못했다.

문 대표는 “초창기엔 실력도 없었는데 운이 좋아 동양의 공연이 눈길을 끌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며 “그때는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초반엔 1000달러 정도의 헐값에 공연하고 체류비와 항공료도 받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2만~3만달러 정도로 몸값이 뛰었다.

해외 공연을 통해 내공을 다져간 ‘월드비트 비나리’가 국내에서 공연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국내 공연을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표는 “그동안 ‘난타’만큼 해외 공연 기록을 잘 활용하지 못했고 해외로 나가도 국내에 터가 닦이지 않아 한국 공연시장을 먼저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공연에 집중다고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버린 건 아니다. 아직 그는 영국 런던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고, 환차손으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런던을 기점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도 확고하다.

▶‘월드비트 비나리’가 가야 할 길=진주에 거점을 두고 1983년 창단한 들소리가 1999년 서울에서 공연을 하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경상남도 양산의 한 청소년수련원에서 활동한 들소리는 대관도 할 수 없었고, 주류에 진입하기가 힘들어 할 수 없이 선택한 것이 해외공연이었다. 30년 가까운 시간을 돌고돌아 드디어 올해 전용관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문 대표가 항상 고민하던 것은 좋은 연주자를 찾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니다. 1.5팀 정도로 구성된 ‘월드비트 비나리’가 안정적인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배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다. 과거엔 기량이 떨어져 해외 공연을 보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문 대표는 “국악 전공자가 국공립단체에 들어가는 것 외에 꿈이 없다”며 “음악적 깊이를 가진 음악가로서의 삶이 꿈이 아니라 기관에 들어가는 것에만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월드비트 비나리’가 연주자를 위한 새로운 자리를 만들고 시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력 좋은 학생은 아카데미식의 교육을 통해 해외 진출도 활발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또 세계적 명성을 쌓은 연주자가 탄생하면 그들을 보고 ‘월드비트 비나리’와 비슷한 여러 팀이 탄생할 수 있고, 기존 시스템과 체제에 대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정착할 시간이 필요하다. 오픈런 공연은 기한없이 언제까지든 할 수 있다는 의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 공연을 내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막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야 할 ‘월드비트 비나리’가 공연이 제 궤도에 오른 이후에도 롱런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많은 넌버벌 퍼포먼스가 공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월드비트 비나리’가 선택한 것은 끊임없는 레퍼토리 개선이다. 우리 음악을 무기로 코미디와 타악에 의존하지 않고 연주자가 1인7역을 하며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은 누군가 음식을 떠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 떠먹으려는 ‘월드비트 비나리’의 노력이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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