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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서 큰 화제 모았던 이세현의 ‘붉은 산수’..어떤 그림이길래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캔버스 가득 붉은색이다. 흰 화폭을 핏빛으로 물들인 산과 강, 그리고 섬과 집들이 눈을 찌른다. 이세현(Lee Seahyun 45)의 ‘붉은 산수’다.

이세현은 ‘붉은 산수’로 오랜 무명시기를 딛고,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작가다. 해외 갤러리에서의 전시 초대및 경매 출품 제의가 줄을 잇는 바람에 국내 전시는 한동안 미뤄져왔다. 때문에 8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 본관과 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이세현의 그 소문난 ‘붉은 산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모처럼의 자리다. 게다가 작가는 ‘붉은 산수’를 잇는 새로운 신작도 함께 내걸었다.

▶“붉은색, 저도 두려워요. 그런데 참 아름답죠”= 한옥으로 된 학고재갤러리 본관에 들어서면 이세현의 ‘붉은 산수’ 대작들이 흰 공간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분명 우리 산천을 그린 풍경화인데 비현실적이다 못해 환각을 불러올 만큼 쇼킹하다. 녹색이 아닌 새빨간 풍경이라니….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을 뜻하는 ‘플라스틱 가든’(Plastic Garden)이라는 타이틀 아래 열리는 이세현의 서울 전시에는 트레이드마크인 붉은 산수, 즉 ‘비트윈 레드(Between Red)’ 연작 14점이 내걸렸다. 작품들은 단순한 풍경화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쓰러져가는 건물과 군 초소, 포탄의 흔적이 삽입돼 동족상잔의 전쟁과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은 우리의 지난 역사를 건드린다.
 
[사진제공=학고재]

그가 ‘비트윈 레드’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영국 유학시절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와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첼시예술대학원을 다니던 중 ‘과연 나다운 그림은 무엇일까’ 고심하던 끝에 나온 게 붉은 빛 산수화다. 그는 한국의 역사와 상처를 붉은 물감으로 표현하며 마침내 오랜 응어리를 터뜨렸다. 

“군복무를 하며 야간투시경을 쓰고 바라봤던 아름다왔던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원래는 녹색이지만 녹색으로 그리면 그저 아름답기만 할 것같아 정반대의 붉은색을 골랐죠. 금기시됐던 색이었기에 저 역시 두려웠지만 너무 매혹적인 색이라서요.”

분단된 한국의 현실과 산업화로 피폐해진 산천을 표현한 이세현의 ‘비트윈 레드’ 연작은 해외 화단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그를 단박에 유명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6년 첼시예술대학원 졸업작품전에 출품했던 넉점의 작품은 곧바로 완판됐다. 

스위스의 유명 컬렉터인 율리 지그는 런던의 작업실로 찾아와 “그동안 한국 작가 작품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왔다. 그런데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로 그 비극성을 다루는 작가를 못 만나 섭섭했는데 당신 작업에서 이를 봤다. 너무 아름답고 압도적이다”며 반겼다. 지그는 이후 이세현의 작품을 꾸준히 사들여 현재 10점을 소장 중이다. 


얼핏 조용한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이세현의 붉은 산수는 인간에 의해 파괴된 디스토피아이기도 하다. 몸속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뽑아내 그린 듯한(미술평론가 윤재갑의 평) 그의 그림은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품으며 세상의 양면을 우리 앞에 강렬하게 드리운다.

동시대 아픔과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는 신작=이세현은 이번 개인전에 기존의 ‘비트윈 레드’ 연작(14점) 외에 신작인 분재 회화, 분재 조각 1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기존 작품들이 역사의 상처와 사라진 풍경을 다시점으로 세련되게 표현했다면 신작인 ‘레인보우’는 동시대 아픔과 왜곡된 사회현실을 강렬한 오방색으로 보여준다. 지극히 거칠고, 표현적인 것이 신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독특한 것은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풍경과 사회를 담아냈다는 점이다. 작가는 동양에서 미의 총아로 불리는 ‘분재’가 기실은 인간의 잔혹함과 억압의 산물임에 주목했다.


신작들은 한 가지 색을 사용함으로써 작품이 갖게 되는 제한성을 뛰어넘고자 고민한 흔적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작가는 “어린 시절 무당집을 자주 찾았다. 무당집의 화려한 색깔과 알싸한 공기, 그것에서 이번 신작이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림들엔 알록달록 일곱색의 무지개가 그려져 화려함을 뿜어낸다. 그런데 무지개 또한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저 찰나에 ‘반짝’하고 나타났다 스러진다는 점에서 허망하고 슬프긴 핏빛 ‘붉은 산수’와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이세현은 이번에 조각에도 도전했다. 사각의 벌집들을 가느다란 철근 위에 층층이 쌓아올려 처연함을 보여주는 조각에 ‘무릉도원’(샹그릴라)라고 명명하는 식이다. 이렇듯 4점의 대형 조각 또한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비극적 역사와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모두 버려진 재료들을 끌어모아 수작업으로 완성함으로써 아날로그의 질박한 힘을 묵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02)720-1524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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