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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빠바서 만난 썸남 에바?"10대 은어 무슨 뜻?
[헤럴드경제=민상식ㆍ서상범 기자ㆍ김인혜 인턴기자]

“쌤 수업 캐빡세요. 개짜증나요.(선생님 수업 너무 힘들어요. 너무 짜증나요.)”



경기 김포의 초등학교 교사 김모(29) 씨는 요즘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대화할때 한숨부터 나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를 쓰는 데다 최근엔 모든 말 앞에 ‘개’나 ‘캐’를 붙여 말하는 게 유행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은어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줘도 고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적불명의 은어가 청소년의 일상 용어로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지난해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 조사’에 따르면 중ㆍ고등학생 응답자의 100%가, 초등학생도 97%가 은어를 사용한 적 있다고 대답했다.

은어는 어느 세대에나 존재했고, 시대 상황이나 주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해 왔지만 문제는 은어가 인터넷을 통해 널리 퍼져 일상용어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은어로만 대화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심각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줄임말 중독에 빠진 여학생들=“빠바에서 썸남 만났는데 걔가 너무 에바 심해.(파리바게트에서 요즘 연락하는 남자를 만났는데 너무 오버하더라.)”

은어는 여학생과 남학생 사이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주로 문자나 메신저 등으로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10대 여학생들은 줄임말에 익숙하다. 최근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 등이 대세가 되면서 대화를 빠르게 하려면 줄임말을 쓰는 게 필수다. 고등학생 김초혜(17) 양은 “단어가 길면 말하기 귀찮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귀기 전단계의 남자를 가리키는 말로 ‘썸남(섬싱(something)+남자)’, 평범하게 생긴 남자애를 두고는 ‘흔남(흔한 남자)’이라고 부른다.

고등학생 최혜민(19) 양은 “썸남과 같이 처음에 뜻을 몰랐던 단어도 다른 애들이 쓰는 걸 보고 뜻을 알았고 따라쓰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또 “여학생들은 주로 열폭(열등감 폭발), 김천(김밥천국), 에바(오버의 변형), 썸타다(관심가는 남자와 잘돼가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정소원(19) 양은 “평소에 센척(괜히 나대거나 강한 척하는 것), 멘붕(멘탈 붕괴), 쩐다(특정일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와 같은 은어를 쓴다”면서 “은어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데다 발음할 때 센소리와 된소리가 많이 나서 재밌다. 습관적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게임ㆍ스포츠 은어에 빠진 남학생들=“횽 어제 레알 엄크 떴어.(형 어제 진짜로 엄마가 갑자기 방에 들어와서 게임에서 나왔어.)”

남학생들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같은 남초 사이트(남성 사용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커뮤니티)에서 나온 은어를 사용한다. ‘횽(형)’ ‘짤(사진)’ ‘짤방(사이트에 올리는 게시글이 짤리는 것을 방지)’ 등 인터넷 활동과 관계된 단어들이 대부분이다.

고등학생 김지훈(17) 군은 “디시인사이드에서 만들어진 단어들이 재미있어 많이 사용한다”면서 “뉴비(신입회원), 성지(사이트 내 조회수가 높거나 유명한 게시글), 성지순례(특별한 의도없이 유명게시글을 클릭하는 행위), 웃프다(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 등을 주로 쓴다”고 말했다.

남학생들은 대개 게임이나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들이 사용하는 은어에는 게임이나 스포츠에서 파생된 것이 많다. ‘쥐쥐(GGㆍ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패배했을 때 쓰는 단어, 졌다는 의미)’, 현피(현실의 앞글자인 ‘현’과 피케이(PKㆍPlayer Kill)의 앞글자인 ‘피(P)’의 합성어, 온라인상에서 일어난 다툼으로 현실에서 직접 만나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 것), ‘레알(real을 뜻하는 말로 진짜, 사실이라는 의미)’, ‘리즈시절(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나온 단어로 과거에 잘나갔던 사람)’ 등이다.

청소년의 은어 사용, 기성세대가 이해해야=은어는 집단 구성원들에게는 결속력을 강화시키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한다. 초등학교 교사 김 씨는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교사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 사용이 요즘 너무 과도하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은어에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단어도 많다는 것. ‘덕후(오타쿠의 변형으로 만화나 게임 등에 빠진 사람을 비하)’, ‘현시창(현실은 시궁창ㆍ이상은 높은데 제대로 하는 일이 없는 경우)’, ‘안여돼(안경 쓰고 여드름난 돼지)’ 등 상대를 비하하는 은어도 있다. 거기에다 비속어과 욕설까지 섞인 거칠고 상스러운 언어들이 남발되고 있다.

이대로 한국어정보학회 부회장은 “청소년들이 매일 공부만 해야 하는 등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기성세대가 모르는 자기들만의 은어를 사용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면서 “청소년들이 쓰는 은어가 우리 공식언어에까지 침투하면서, 우리 대중언어 생활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회가 건강하면 비속어나 노인, 여성 비하 은어가 덜 퍼지게 된다”면서 “청소년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등 사회가 바람직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비속어는 자제돼야 하지만 은어의 경우에는 어른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고칠 것을 강요해선 안된다”면서 “은어는 한 세대의 문화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청소년과 부모 세대의 소통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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