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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시대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는 고향에 대한 마음보에 따라 인간을 세 가지로 나눠 평가했다.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며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자는 그보다 상급에 속한다. 그리고 모든 곳을 타향으로 여기는 자가 맨 윗자리에 자리한다. 이 분류에 따르자면 민족주의자보다 나은 사람은 세계시민주의자 그리고 아웃사이더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범박한 분류를 그대로 따르긴 어렵다. 우리의 경험에 비춰볼 때 독립 운동가와 통일 운동가에게 민족주의자란 이유로 저급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하다.

정치학자 곽준혁과 조홍식이 엮은 ‘아직도 민족주의인가’는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올바른 기능을 암중모색하는 9편의 논문을 한데 모았다. 저자들의 분석은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을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민족주의는 나를 규정하는 하나의 준거 틀이지만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짓는 폭력성과 배타성을 갖고 있단 것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숱한 전쟁과 학살을 초래한 강력한 동인 중 하나가 민족주의였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들은 대안적 민족주의의 조건들을 살핀다. 민족주의가 개인의 희생과 헌신만을 강조하는지, 혹은 정치 참여를 통한 자율성을 애국심의 전형으로 제시하는지,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민족주의의 퇴행을 막을 실질적인 힘은 존재하는지의 여부 등등이 그것이다.

다문화와 다민족 경험이 일천한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오랜 시간 동안 동일한 영토에서 형성된 동질성”이란 신념에만 머물지 않고 “시민적 자유와 책임을 통해 구성해온 도덕적 시민적 품위” 즉 성숙한 애국심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모색은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의미 깊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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