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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기자 안상미, 요르단 사막 레이스 완주기
[헤럴드경제=안상미 기자]영화 ‘미션 임파서블 4’를 보면 나온다. 모래폭풍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막무가내로 모래와 먼지를 한가득 머금은 바람이 몰아쳤다. 여기저기 꽂혀 있던 깃발들이 뽑히기 시작했다. 남자 선수들은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나무 기둥을 붙들고 버텼다.

완전히 어두워지자 바람이 좀 잦아들었다. 난장판이 된 천막들 사이를 오가며 물품을 챙기는데, 바람에 날아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등산스틱 한 개가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 롱데이에 힘들면 쓰려고 여태 짊어지고 다녔는데 말이다.

▶꼬박 지새운 롱데이 전야=사막 레이스의 하이라이트는 롱데이다. 레이스 5일째 아침에 출발해 1박 2일, 혹은 무박 2일 동안 90km 안팎의 거리를 완주해야 한다.

이전 4일간은 사실상 롱데이를 위한 적응기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힘들고 난관이 많다. 이번엔 11개 구간, 총 89.4km. 난이도 ‘상’ 구간이 세 곳, ‘최상’ 구간이 하나다.

발은 물집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고, 잠도 충분히 자둬야 하는데 모래폭풍이 이 모든 것을 틀어놨다.
양말도 벗지 못하고, 바람을 피해 침낭 입구를 꽁꽁 싸매고 쭈그리고 누웠다. 한 번씩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밤새 자는 둥 마는 둥 지새우고 말았다.
안상미 기자

아침에 옷을 벗었더니 기가 막힌 일이 벌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피부 트러블이 보였다. 발목과 무릎 안쪽 등 접히는 부분엔 모두 군데군데, 근질근질했다. 그냥 씻지 못해 그러려니 했다. 별다른 이상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벌겋게 부어오른 상태를 지나 고름이 누렇게 차 볼록한 단계로 발전해 있었다.

이래저래 우울해졌다. 항생제를 받아 먹었더니 다소 몽롱해졌다. 그냥 어디서라도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3시간 만에 1200m 고지로=빨리 뛰는 선두권 선수들은 롱데이 중간에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면 밤늦게나 새벽 1~2시면 들어간다.

뒤처진 선수들은 중간에 쪽잠도 자고, 저녁도 먹는다. 체크포인트 6 지점에 간단한 천막과 뜨거운 물이 제공된다고 하니 너무 늦어지기 전에 거기까진 도착해야 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는 둘째 치고, 이번 롱데이 코스엔 오르막이 너무 많았다. 속도를 낸다고 했는데도 10km 한 구간을 지나는 데 평균 2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배번호 3번인 기자가 레이스 5일째 롱데이 오르막 코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돌산같이 보이지만 화산지대로 곳곳에 유황 흔적들이 남아 있다. 뒤따라 오는 노르웨이 선수는 재작년 사하라 레이스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중도 포기했는데, 이번엔 완주에 성공했다.
레이스 4일째 저녁 캠프에 모래폭풍이 불어닥치자 선수들이 나무기둥을 잡고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버티고 있다.

게다가 5번째 구간은 난이도 ‘최상’이었다. 해발 500m에서 1200m 고지까지 줄곧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코스다. 해가 어느덧 넘어가 햇빛이 약해졌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행동식만으로는 체력 보충이 안 된다. 속도는 점점 느려져 3시간이나 걸리고 말았다.

이번이 21번째 오지 레이스인 유지성 씨 말이 롱데이만큼은 어떤 다른 대회보다도 힘든 코스였다고 했다.

▶“이젠 정말 다시 안 가”=결승점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다. 레이스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페트라까지 6.5km 구간을 더 가야 하지만 이때 걸린 시간은 합산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선수들이 속도를 내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수들은 페트라를 감상하며 천천히 이동하다가 멋진 골인 장면만 연출하면 된다. 결승선 앞에는 콜라와 햄버거가 기다리고 있다.

온몸 성한 구석 없이 쑤셔왔다. 롱데이를 걸으면서는 ‘사막 레이스에 다시 오면 사람이 아니다’고 수백 번을 되뇌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만이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했다.

근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막상 결승점을 지나고 남녀 1, 2, 3등과 연령대별 1등 시상을 보니 은근슬쩍 부러워졌다.
조금만 더 훈련하면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힘들었던 기억을 더 빨리 잊을 것도 같다. 이게 문제다.

hu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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