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내려진 날이다. 개정안은 두발ㆍ복장ㆍ휴대전화 사용 등 학생 생활지도 사항을 학칙으로 정해 운영하는 내용이 골자다. 3월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와 전면 대치되는 내용이다.
개정안과 조례의 충돌로 인해 당장 학교 현장의 혼란이 예상됐다. 기자는 서울시교육청의 입장 및 대응방침이 궁금했다. 조례를 담당하는 시교육청 책임교육과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과장은 “현재 개정안을 살펴보며 논의를 하고 있다”며 “그런데 내용에 문제가 많다. 법무팀이랑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기자는 “법무팀과의 논의는 법적 대응 등에 대한 검토 때문인건가”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자는 이를 바탕으로 시교육청이 법률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작성했다. 시교육청 공보실은 “오후 1시 이전까지 시교육청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공지를 하기도 했다.
이날 정오 무렵 담당 과장은 기자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해왔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라는 항의였다. 기자는 “오전 통화 때 법무팀과 논의 중이고 법률 검토를 한다고 들었다”며 “그렇다면 지금 정해진 입장이 뭔가”라고 물었다. 과장은 “지금 그런 걸 추진할 상황이 아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정확한 의미를 재차 묻자 “그럴 경황이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사이 곽 교육감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전까지 시교육청 내부에서는 “1심과 비슷한 수준의 판결이 나오지 않겠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예상외의 실형 선고에 시교육청이 혼란에 빠졌다. “그럴 경황이 없다”는 과장의 말도 같은 맥락이었던 셈이다.
1시간 후 시교육청 공보실은 “시교육청은 개정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법률 검토를 염두에 둔다던 오전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입장이었다. 결국 기자는 기사를 수정해야 했다.
다음날인 18일 점심, 곽 교육감은 기자들과 시교육청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개정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곽 교육감은 “부서에서 왜 입장을 내놓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제(17일) 내 판결 때문이었나”라며 “오늘(18일) 신문에 조례가 무력화됐다고까지 나오더라. 교과부 입장만 반영이 됐다”고 말했다.
곽 교육감의 발언 이후 1시간여가 지난 후 시교육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개정 시행령은 학칙이 어떠한 내용이어야 하는 것까지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며 “일선학교에서 학칙을 개정할 경우 그 내용은 조례의 취지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장표명을 하지 않겠다”던 결정이 곽 교육감 발언 이후 하루 만에 뒤바뀐 셈이다. 이틀 만에 입장이 세 차례나 바뀐 꼴이었다.
기자는 다시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어제는 서로 소통이 잘 안 된 것 같다”며 “교육감이 기자들과 나눈 이야기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이어 “논의를 통해 보도자료를 내게 됐다”며 “학칙이 인권조례에 부합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한 부분이 교과부가 밝힌 ‘인권조례의 효력 상실’에 대한 내용을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입장을 다시 표명한 이유에 대해선 명확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현장은 혼란스럽다. 교과부와 교육청의 갈등으로 학생 생활지도 방침이 하루가 다르게 뒤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교육청은 개정시행령에 따른 정확한 입장 및 방침을 신속하게 밝혔어야 했다. 교육감의 일신의 변화에 정책에 대한 시교육청 입장마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