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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잎 김치, 고등어 쌈밥?
못잊을 어머니 손맛...추억의 음식 새록
<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의 손맛>(이숲. 2011). 제목 속의 ‘죽어도’란 부사는 마치 독자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시위’하는 듯하다. 그러나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들이대며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저자의 주장에 두 손을 들고 마는 형국이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어머니 그리고 고향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 처음은 보리밥이다. 가난했던 예전 시절, 유년의 기억은 보리밥으로 시작한다. 홀로 꽁보리밥을 먹던 저자는 그 기억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보리밥은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추억으로 먹어야 제맛나는 아주 멋진 음식이다. 요즘도 더러 아내에게 푹 삶은 보리밥을 주문하고 다른 반찬은 일절 밥상에 올리지 못하게 한다. 다만, 열무김치와 매운 풋고추를 듬뿍 썰어넣은 된장 뚝배기만을 앞세우고 자주 고향여행을 떠난다.’ 79쪽

고향의 여름엔 ‘피라미 별미’도 있다. 강에서 잡은 피라미를 찌그러진 냄비에 왕소금만 뿌리고 볶아서 먹거나 굵은 소금을 뿌린 후 호박잎으로 싸서 보릿짚 불에 쪄 먹는 맛은 일품이다.

어머니가 해준 음식 중 하나로 ‘시금장’을 소개하고 있다. 시금장은 보리쌀겨로 만든 경상북도 향토음식이다. 대체 그 ‘장’은 얼마나 맛있을까. 저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옛 추억을 되살리려 직접 장을 담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런데 만들었으나 제대로 된 맛은 나오지 않았다. 저자는 ‘하도 답답해서 어머님 묘소를 찾아가 농담 삼아 “시금장 담가주러 이승에도 한번 오시지요”라고 말한 적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저자는 자신이 맛본 최고의 음식으로 상을 차려낸다. 그 한 예는 ‘고등어쌈밥’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음식이 아니다. 알고 보니 고등어 회를 곁들인 쌈을 말한다.

동해 ‘월포리’란 포구에서 정치망 그물을 걷어 올리는 뱃사람들을 따라 새벽바다에 나가면 육지에선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고등어를 나뭇잎 크기로 포를 뜨고 밥 한술에 날된장과 통마늘 한 개를 얹어 먹으면 정말 기막힌 고등어 쌈밥이 된다. 107쪽

낯선 음식도 다수 소개된다. 그중 ‘마재기’란 음식이 눈길을 끈다. 마재기는 해초의 일종으로 모자반의 사투리며 겨울에 자주 먹는 음식이다.

‘마재기만 생각하면 고향 생각이 난다. 어제는 모처럼 내리는 눈길을 걸어 마재기를 맛있게 무쳐내는, 소문나지 않은 잡탕전문 식당에 갔다. 소주 한 병을 시켜 마재기 무침을 먹는 동안 어머니가 어른거려 마렵지도 않은 소피를 보러 괜히 변소를 들락거렸다.’ 154쪽

시래기나 곤드레밥 외에도 콩잎김치나 콩나물횟집처럼 낯익지 않은 음식조차 입맛을 당기게 한다. 그 이유는 저자의 깊은 사유와 빼어난 글 솜씨에 있다.

깊은 구덩이 속에 들어 있던 무는 얼지 않은 생무 그대로였다. 푸른 부분부터 한입 베어 먹어보니 얼마나 시원하고 맛이 있던지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나는 것들이 별빛, 등불, 성자만은 아니다. 눈 오는 그날 밤에 먹었던 눈구덩이 속의 생무도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발광체임이 분명했다. 무 한 조각의 감동이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지금도 내 마음의 벽면 높은 곳에 어둠 속의 판화처럼 걸려 있다. 그 판화의 제목은 ‘그리움’이다. 44쪽

음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이는 꼭 읽어볼 책이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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