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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전명 ‘34:1을 뚫어라’…뮤지컬 ‘아이다’ 오디션 현장속으로
“사실, 성악 전공했는데 뮤지컬 배우가 정말 되고 싶어서 지원했거든요. 다들 실력도 쟁쟁한 거 같고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도 눈에 띄어서 진짜 떨리네요.”

한 손에 생수병을, 다른 한 손엔 악보를 든 채 복도를 서성이며 가사를 몇 번이고 되뇌어보는 대학 졸업생 이모(24ㆍ여) 씨. 그의 말에는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신도림디큐브아트센터 7층 한켠 뮤지컬 ‘아이다’의 오디션 현장. 작품의 주역 자리를 놓고 지원자들이 열띤 경쟁을 펼쳤다. 전체 지원자 540명 중 아이다 지원자만 68명. 단 두 명의 아이다를 향해 신인과 기성배우가 계급장도 뗀 채 연출진을 사로잡는 ‘3분의 마법’을 선보여야 한다. 작전명 ‘34대 1을 뚫어라!’


▶삼세번 쯤이야…아이다 역할, 포기하지 않겠어!= 악보를 든 김모(32ㆍ여) 씨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오디션 현장에 들어선다. ‘아이다’의 고뇌가 담긴 가사가 마치 자신의 사연이라도 되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쓰러져 죽어도 포기하지 않아…이 모든 일이 너무나 쉬운 거라고, 쉬운 일이야.” 김 씨는 지난 2010년, 아이다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에 두루 출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로서 경험을 쌓아왔지만 ‘아이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감히 재도전했다.

이미 알려진 배우라고 평가에 다른 잣대를 적용하진 않는다. 연출을 맡은 키스 배튼(Keith Batten)이 노래를 듣다가 아쉬웠던 부분을 가차 없이 지적한다. “가사는 쉽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표현해야 해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는데, 만나지 말라고 하면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 감정이 잘 살아야 해요.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쉬운 거라고’ 하는 부분은 반어법이겠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쉽지 않은 감정표현이네요”라고 대답하는 김 씨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눈을 감은 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연출가가 짚어준 포인트를 살려 이번엔 얼굴 표정과 제스처에도 아이다의 심정을 실어 노래를 불러본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두 팔을 내뻗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고음을 내지른다.

[사진제공=신시뮤지컬컴퍼니]

국내 연출을 담당한 박칼린은 “춤,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연약한 이미지는 아이다와 맞지 않아요. 음색, 외모, 키 등 아이다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캐스팅할 겁니다”라며 캐릭터에 걸맞은 이미지와 섬세한 감성을 잘 연출할 수 있어야 캐스팅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다의 노래처럼 같은 오디션에 2~3차례 재도전하는 경우는 김 씨뿐만이 아니다.

지난 아이다 작품에서 앙상블로 참여했다가 이번에는 조세르 역에 지원한 김모(27) 씨는 “솔직히 오디션에 떨어질 때는 실망감이 크죠. 하지만 더 큰 배역도 잘 해내면서 뮤지컬 배우로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라며 “뮤지컬 배우에게 오디션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고, 될 때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7전 8기라도 괜찮아. 오디션 기회만 주어진다면…= “잠깐만요. 아이다보단 암네리스가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암네리스 노래 준비한 거 있죠? 콧소리 다 빼고 본인 목소리로 한번 해보죠.” 연출자가 아이다에 지원한 이 씨에게 다른 배역의 노래를 즉석에서 요구하자 이 씨는 당황하는 듯 하더니 이내 전혀 색다른 음색을 뽐내며 노래를 다시 부른다.

박칼린은 “무대에 있으면 안 보이는 것도 심사하는 자리에 있을 때는 다 보인다니깐…”이라며 웃음 짓는다. 이 씨뿐만 아니라 이날 각 지원자들에겐 제작진의 날카로운 조언이 이어졌다. “성대를 누르지 말고 노래해 보세요.” “박자가 거기선 엇박이에요. 박자감을 살리세요.” 연출가의 예리한 시선이 힘을 발휘하는 때다. 공개오디션의 특징은 이처럼 이름이 알려진 배우건, 무명의 배우건 상관없이 지원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같은 잣대로 평가받는다는 것. 때문에 일부 지원자에게 오디션은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음색을 재발견하고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를 찾는 계기가 된다.

노래를 마치고 나온 이 씨는 “실수는 좀 한 거 같은데 또 배운 점이 있으니까 괜찮아요”라며 “막연히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는데 막상 방법을 잘 모르겠거든요. 성악만 전공했다뿐이지 뮤지컬에 적합한 발성은 또 따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오디션 자체가 배우는 기회죠”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 떨어져도 도전하다보면 언젠가는 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며 오디션 기회만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디션 전 과정을 지켜본 연출가 배튼은 “이번에 지원자들을 보면서, 지난 7년간 한국에 더 좋은 목소리를 가진 배우들이 많아졌다는 점을 느꼈고, 성장 가능성을 엿봤다. 똑같은 사람이 오디션 현장에 다시 나타나 지난번보다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오디션 참가자들을 본 소감을 밝혔다.


<황유진기자@hyjsound> hyjgo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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