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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름신 자극하는 디자인 언어 ‘통역이 필요해’
여기 당신이 새로 구입한 노트북이 담긴 상자가 있다. 포장을 뜯는 순간 검은 본체에 흰색 케이블을 발견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일관성 없는 디자인은 컴퓨터란 사물의 계산과 논리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쉽다.

‘사물의 언어’(홍시)의 저자인 데얀 수직에 따르면 디자인은 곧 메시지다. 디자인은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탐구해야 할 암호”이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언어인 셈이다.

이는 활자체만을 봐도 쉽게 드러난다. 신문과 도로 표지판의 활자체에는 강약을 나타내는 시각적 특징들이 있으며 디자인이 곧 가치나 성격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사물들에서도 발견된다. ‘발터 PPK’ 자동권총의 안전장치를 이루는 검은 바탕의 빨간 점은 안전장치가 풀렸을 때만 보이는데, 이는 미적 선택인 동시에 안전을 위한 것이며 상대방에 위협을 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각각의 디자인에는 사물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 있으며 디자인은 이를 바탕으로 모양새의 원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오늘날 사치품들은 어떠한가? 결핍의 시대를 벗어나며 디자인은 ‘과시적 소비’의 욕망에 봉사하고 구매를 유혹하는 디테일에 골몰할 뿐이다. 이러한 디자인은 “사려 깊고 세심하게 만든 물질적 사물들의 질을 이해하는 데서 느낄 수 있는 기쁨”, 즉 사물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즐거움을 앗아버렸다.

이에 앞으로 “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맹목적 소유의 강박은 호사가 아니며 이로부터 벗어날 때 진정한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물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디자인에 대한 매혹과 반성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 조심스레 저자를 뒤따르다 마주치게 되는 사물들의 민낯이 새삼 경이롭고 흥미롭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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