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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전히 센…현정화
웬만해선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선수에서 감독으로 탁구협회 전무로, ‘파이팅’은 아직 앙칼지다

할 말을 참고, 에둘러 가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현정화 스타일이 아니다
 
2년전 TV에 함께 출연했던 딸 “엄마가 슈퍼우먼이라고 느낀 건 술을 아무리 먹어도 끄떡없을 때…”

남북한 선수가 한팀 이뤄 세계 정상에 올랐던 1991년 지바, 악바리 그녀는 그곳에서 평생 단 한번의 눈물 흘렸다

“살면서 그때의 감동 제대로 표현해본 적 없었는데, 그 기억, 영화에선 잘 나타났으면…”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탓인지, 마른 몸에 걸쳐입은 정장이 추워보였다. 하지만 주위의 축하인사를 받는 그의 얼굴엔 당당함과 여유가 넘쳐흘렸다.

마사회 탁구감독이자 대한탁구협회 전무 현정화(43). 스무 해 전 앙칼진 ‘파이팅!’ 소리와 다부진 표정으로 만리장성 중국을 무너뜨리고 녹색 테이블을 평정했던 ‘탁구스타’ 현정화는 지금,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가 휩쓸고 있는 국내 여자탁구에서 자신의 제자 서효원을 챔피언으로 조련했다. 여전히 현정화는 탁구와 함께 정상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2011년은 현정화의 탁구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탁구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5차례 이상 우승해야 자격이 주어지는 대단한 위업이다. 또 1991년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던 지바 세계선수권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았다. 또한 이를 소재로한 영화 ‘코리아’의 자문을 맡았다. 자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할로 하지원을 추천하기도 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혹시 영화 개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해 제작사에 전화를 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추위가 전국을 강타한 지난해 세밑, 인터뷰 장소인 마사회 홍보팀 회의실에 도착했다. “여기 춥죠? 차라리 식당에 가서 할까요?” 남들 눈이 많은 구내식당도 개의치 않았다. 할 말을 참고, 에둘러 가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현정화 스타일이 아니다.  

20년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줬던‘ 원조 국민여동생’ 현정화. 남북한이 한반도 깃발 아래 단일팀으로 세계 최강 중국을 꺾었던 일대 사건의 주인공치곤 그때 일을 너무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지금은 감독으로, 협회 전무로 제2의 탁구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여전히 한국탁구의 헤로인이었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평생 단 한 번 눈물을 흘렸던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

한국 스포츠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건이기도 한 지바 대회. 남한과 북한 선수가 근 50일간 한팀을 이뤄 세계 정상을 밟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똑소리나는 현정화도 자신의 탁구인생에서 단 한 번 눈물을 흘린 것이 이 대회였다고 정확히 기억했다.

“세계선수권 단식에서 우승했을 때도 안 났던 눈물이 이때 나왔어요. 아마 내가 네 번째 경기를 지고 마지막 경기(북한의 유순복)를 응원하다보니 감정이 점점 격해졌던 것 같아요.”

경기가 끝나자 주위에 있던 수십명의 취재진까지 흥분을 감추지 못해 달려나왔고, 코칭스태프는 선수(현정화 홍차옥 이분희 유순복)를 보호하기 위해 라커룸으로 몰아넣었다. 서로 축하를 하며 기뻐하던 와중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현정화는 돌이켰다. 부둥켜안고 울다가 급히 시상대에 올라가다보니 트레이닝복도 챙겨 입지 못해 당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선수들은 반바지 유니폼 차림이다.

현정화는 “지바 대회는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고 ‘기억’이다.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고, 기억으로만 남는 거니까….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스무살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목표를 위해 노력한 거다. 처음에는 서먹한 남남이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니까 두 나라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또 “당시 조총련이 찍어준 화면이 있었는데, 내가 ‘이 우승으로 작은 통일을 이룬 것 같다’고 한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말 하라고 해도 못할텐데”라며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지바 대회를 소재로한 영화 제작에 대해 “사실 살면서 지바 대회를 자주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그 일을 끄집어내준다니 감사했다. 탁구인이라서 가능했던 일이라 너무 기뻤다. 나 자신이 그때의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 그런 게 잘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고싶은 이분희 언니

흔희 현정화의 탁구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3명의 여자선수로 홍차옥, 양영자, 이분희가 꼽힌다.

현정화는 “고교시절 항상 홍차옥이 1위였다”며 속상했다고 말했다.

선배 양영자는 현정화가 태극마크를 달기 전 대표팀에서 맹활약하던 에이스. 이후 현정화와 짝을 이뤄 한국탁구를 이끌었다. 신앙이 두터웠던 양영자는 역시 독실한 신자였던 현정화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북한의 에이스로 한 살 위였던 이분희는 현정화와 유독 각별했다. 그러나 체제가 다른 이들이 서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영국대사를 통해 우연히 이분희의 근황이 담긴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봄 마틴 유든 영국대사와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기념 경기를 했는데,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이분희로부터 ‘현정화에게 전해달라’는 사진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으로만 봤지만 반가운 마음은 말로 하기 어려웠어요.”

수십년간 제대로 된 소식도 듣지 못했지만, 지바에서 맺어진 끈은 친자매 이상으로 질기게 둘을 묶어놓고 있었다.

▶범생이, 그러나 지고는 못사는 악바리

대신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처음 접한 현정화. 작고한 부친도 부산상고 시절 탁구선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특별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우승을 차지했고, 중3 때는 영국 주니어오픈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혼나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시키면 잔소리 안 들으려고 죽기 살기로 완수하는 범생이 스타일이죠. 예전 태릉보다 더 적막했던 기흥 탁구대표팀 훈련장에서도 연습 끝나면 숙소에서 조용히 지낼 만큼 별로 딴 생각을 안했어요.”

탁구밖에 모르고, 연습도 시키는대로 다 소화하는 현정화가 점점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신조는 ‘노력 뒤엔 성공’이었으나, 이제는 ‘늘 최선을’로 바뀌었다.

“경기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있어요. 쉬운 상대도 얕잡아보면 지고, 강한 선수도 공 하나하나에 죽을 힘을 다하면 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승하려면 끝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가 제자에게 강조하는 것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연습 때 하나라도 대충치는 선수는 반드시 경기 때 그런 샷을 한다’는 것이 현정화 감독의 지론이다.

현정화는 ‘원조 국민여동생’으로 사랑받았을 만큼 얌전한 이미지지만 에둘러 말하거나, 순화시켜 말하는 법이 거의 없다. 언론사의 인터뷰에서도 “쫄았다”는 정제되지 않은(?) 말도 하고, 명예의전당 축하난을 보낸 후배에게 “난은 뭐하러, 돈으로 주지”라며 거침없는 농담을 할 만큼 직선적이다. 

당연히 선수를 지도할 때도 그렇다. “대놓고 얘기해요 전. 못했는데 ‘괜찮다’ 이러는 거 안좋아해요. 본인이 지금 알아야죠. 물론 너무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심한 얘기를 할까봐 다음날까지 참긴 하죠.”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얼마전 외국 원정경기를 갔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선수가 있었다. “몇백만원 들여서 경기를 하러 왔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얼굴 옆의 시멘트 벽을 주먹으로 힘껏 쳤어요. 주위에서 보던 사람들이 손 나갔을 거라고 할 정도였죠.”

사실 속이 빈 벽인 줄 알고 쳤는데 아니었다고. 그 선수는 정신을 차려(?) 지금 현 감독과 여전히 한솥밥을 먹고 있다.  


▶여자, 엄마, 아내 현정화

현 감독을 만나 놀란 것은 40대인데도 선수시절 같은, 아니 선수시절보다 더 마른 몸매였다는 점이다.

“93년 은퇴했으니 94년부터 이 체격이에요. 그때 대학원 다니며 공부한다고 잘 못 먹기도 했지만 원래 별로 많이 먹지 않아요. 선수시절엔 힘이 달리기 때문에 고기니 영양식이니 일부러 먹었지만, 은퇴하고 나니까 다시 소식을 하게 됐어요. 선수시절보다 7~8㎏ 적을 거예요.”

탁구선수 출신 김석만 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는 현 감독은 가족에겐 0점짜리 아내이자 엄마라고 자평한다. 남편은 선수시절 자신을 만나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고, 아이들과는 함께 지낼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딸 서연이 탁구를 곧잘 쳐서 3대째 탁구선수 탄생이 기대됐지만, 그만뒀다. 공부도 잘하기 때문에 탁구는 취미로 하고 다른 일을 했으면 싶다고.

만약 평범한 엄마라면 무엇을 가장 해주고 싶었을까. “뭘 해주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하고 딸하고 뒹굴뒹굴 해보고 싶어요. 남들에겐 너무 흔한 일이지만 그게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2년 전쯤 현정화는 딸 서연과 TV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서연은 “우리 엄마가 슈퍼우먼이라고 느낀 건 탁구때문이 아니라 술을 아무리 먹어도 끄떡없을 때”라는 놀라운 멘트를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건 서연이가 하도 출연하고 싶다고 해서 나간건데, 그런 충격적인 발언을 해버렸죠. 주량은 저녁 먹으면서 소주 2병 정도? 회식하고 계속 가면 거기에 양주 반 병에 소주가 더 들어가기도 해요. 하지만 두 병 정도가 딱 멀쩡한 수준 같아요.”

그만의 해장비법이 궁금했다. “새벽에 깨서 물과 이온음료를 많이 먹고, 아침에 반신욕을 해요. 특별히 찾아먹는 해장음식은 없었는데 마흔이 넘어가면서 한식이 땡기더라고요.”

제일 편한 술친구는 남편이다. 친한 친구는 부산에 많이 있어서 남편 아니면 유남규ㆍ강희찬 감독과 가끔 술잔을 기울인다.

▶한국탁구 르네상스를 꿈꾸는 감독-전무 현정화

현 감독은 지난해 2월 최연소이자 여성 최초로 대한탁구협회 전무에 선임됐다. 지도자나 협회 행정업무를 여간해서 여자에게 맡기지 않는 한국 스포츠 풍토에서는 보기드문 파격 발탁이다.

“전무는 지도자와 달리 탁구계 전체의 현안을 고민하는 자리예요. 하고싶은 일은 많은데 얼마나 잘 해나갈지 아직은….”

젊은 여성 임원으로서 탁구계 대선배와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없을까. “많은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있고, 내가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면 다 좋아하세요”.

공주병도 살짝 있어 보인다. “네, 사실 공주병 있어요. 요즘 자기 PR 시대인데 그게 좋은 거 아닐까요?”

현 감독은 그래서 제자나 다른 탁구인에게 책잡힐 일을 최대한 안 하도록 하고, 옷도 패셔너블하게 입으려 한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한국탁구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최근 중국 선수의 귀화 열풍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당예서처럼 10년을 기다려 귀화했던 선수야 상관없지만, 너무 쉽게 국적을 주면서 받아들이면 한국탁구가 죽는다”고 말했다.

또 국제탁구연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한 세트당 11점 제도에 대해서도 “한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아직 큰 도움은 안된 것 같다. 더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된 뒤 중국 선수는 세트 초반에 승부를 걸어버린다”고 했다.

탁구선수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이는 현정화에게는 하나 더 목표가 있다. 현정화는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껄끄럽다며 말을 아꼈지만 사실 꽤 알려졌다. 국제기구에서 한국탁구를 위해 일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2007년 협회가 집행부의 잡음으로 시끄러웠을 때 잠시 대표팀 코치에서 물러나야 했던 힘든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탁구인 현정화의 결기와 의욕을 단단하게 벼리는 시간이 됐다. 이제 현정화는 웬만한 시련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한국탁구를 선봉에 서서 이끄는 여장부다. 

김성진 기자/withyj2@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 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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