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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문학치료전문가 이봉희 교수, “아프다고 말하라”
슬프고 화나고 우울한 감정은 되도록 숨기는게 미덕으로 여겨진다. 감정의 노출은 모자란 인간으로 비쳐지지만 정신건강의 측면에선 오히려 억누르는 것보다 드러냄이 낫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우리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남의 눈을 의식하는 이런 버릇에서 찾기도 한다. 건강하게 표출되지 못한 분노의 감정들이 안으로 더욱 파고들면서 우울증이 되거나 역으로 공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사회불안을 증폭시킨다고 본다.

강단에서 문학과 글쓰기의 치유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미국공인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는 최근 펴낸 에세이 ‘내 마음을 만지다’(생각속의 집)에서 상처의 건강한 드러내기에 대해 들려준다. 기억 속에 단단하게 웅크리고 있는 상처들을 어떻게 끄집어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느냐다. 저자가 들려주는 자기 치유의 첫 발은 먼저 아픔을 인정하는 것. 저자는 이를 ‘건강한 수치심’이라 부른다.

저자가 입증된 효과를 근거로 제안하는 드러내기 방식은 저널쓰기(일기쓰기). 문학작품을 읽는 것도 자기 상처와 만나는 길이다. 저자는 마음 속 굳은 덩어리를 풀어내고 새살이 돋는 과정이 어떻게 오는지 애드가 알렌 포,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진명 등 국내외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영화 속 얘기들을 끌어와 설명해 나간다.

상처와 치유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에 걸맞게 외로움, 사랑과 이별, 후회와 자책, 기억과 용서, 상실의 회복, 존재의 회복 , 희생 등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주요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경험과 사례로 풀어 어렵지 않다.

이런 요소들은 개인을 넘어 사회의 상처와 아픔, 소통에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없이 써온 말들이 담고있는 병적 요소들을 날카롭게 집어낸다. 



가령 유행어가 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심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넌 참 강해. 넌 혼자서도 다 잘하잖아.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네가 목표한 일을 해내잖아.” 이런 말 때문에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의지하지 못하고 강한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부담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칭찬이란 말에 담긴 길들임의 은밀한 폭력성을 저자는 지적해낸다. 죄책감과 교만이 미묘하게 실린 ‘미안하다’는 말 대신 존재의 겸손함을 담은 ‘감사합니다’란 말을 쓰자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다.

말이 지닌 한계에 대해서도 저자는 그 지점을 인정하는 데서 새로운 소통이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받은 상처는 그 사람 자신도 모르는 언어습관이나 언어의 한계 때문에 생긴 것이지, 그 사람의 본심이거나 의도는 아니라고 믿자는 것. 언어가 나아갈 수 없는 한계 앞에서 해결책은 대화의 단절이 아니라 바로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처와 치유의 방법을 기계적인 프로세스로 제시하기보다 저자의 경험과 상담사례를 통해 들려줌으로써 공감이 크다. 문학작품들의 빛나는 조각들, 상처를 위무하는 저자의 따뜻한 말들이 그 자체로 위로의 힘이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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