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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 “기술력만큼은 소니와 어깨 겨루죠”
HD 방송 모니터 제작 티브이로직 이경국 사장
KBS기술硏 출신 방송장비 시장 개척

유럽 점유율 3위…내달 1일 코스닥상장



“KBS 사내벤처 모집에 HD방송 모니터 사업으로 응모했더니 다들(방송사) 소니, 파나소닉 쓰는데 그게 되겠느냐고 해서 심사에서 떨어진 거예요. 그럼 나가서 직접 만들자고 결심했지요.”

티브이로직 이경국(52) 대표이사 사장이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직장’이란 우스갯소리가 통하던 KBS를 박차고 나와 2002년 창업을 결심한 계기다. 일본 굴지의 브랜드가 점령하던 방송장비시장에서 국산 제품으로는 가시밭길을 걸을 게 뻔하던 때다. 동업을 제안해본 동료도 결국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 사장은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칠 디지털방송 전환의 호기를 놓치지 않을 만큼 기술력에 자신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옳았다. 티브이로직은 HD방송용 모니터 출시 7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90%를 싹쓸이하고, 유럽에선 소니와 파나소닉에 이어 점유율 3위로 올랐다. 지난 회계연도(2011년 6월 말 결산) 매출액 240억원, 영업이익 70억원, 순이익 56억원 규모로 성장해 다음달 1일 코스닥 상장도 앞두고 있다. 이 사장은 ‘KBS기술연구소 출신 1호 코스닥 CEO’란 꼬리표를 달게 된다.

“지금은 KBS 직원이 해외 방송장비 전시회나 외국 방송국을 방문했다가 ‘티브이로직’ 모니터를 발견하고는 반갑다고 전화합니다.”

이 사장의 방송기술과의 조우는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자연시간에 전기 없이 전파를 잡는 ‘광석라디오’를 조립해본 후 라디오의 매력에 흠뻑 매료됐다고 한다. 대학교 진로를 전자공학과로 정한 것도 그때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토요일만 되면 세운상가를 제 집 드나들 듯했다. 중고 전자제품을 구경하고 조립하는 게 취미였다. 서울대 공대 학사, 카이스트 대학원 석사를 마친 뒤 1984년 LG전자(당시 금성사) 중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에는 컴퓨터용 모니터 개발을 맡았다.


인생의 첫 전환점은 88올림픽이다. 당시 올림픽 주관방송사이던 KBS는 개최 1년 전부터 84년 LA올림픽과는 다른 새로운 방송중계 기술을 선보이고자 했다. 학교 선배이던 KBS기술연구소장의 이직 제의로 1987년 KBS로 옮긴 이 사장은 스위스타이밍(국제올림픽위원회 기술전담업체)으로부터 받는 경기기록 데이터를 컬러방송에 맞는 인터페이스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그 전까지는 컬러방송인데 경기 기록은 흑백 데이터였습니다. 국기 색깔과 경기 기록까지 컬러로 표출한 것은 서울올림픽이 세계 최초지요. KBS가 전 세계 방송사에 컬러 인터페이스를 배포해줬는데, 당시 미국 NBC가 우리 기술을 믿지 못하고 자체 개발했던 기억이 나네요.”

KBS기술연구소를 퇴사한 뒤엔 부산아시안게임 조직위로부터 서울올림픽 때와 같은 경기기록 인터페이스 작업 프로젝트를 수주했고, 회사 설립자금 종잣돈 20억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올림픽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방송중계사(史)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것처럼, 디지털방송 전환도 그의 인생사에 결정적인 대나무 마디로 작용한 것이다.

이제 이 사장은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직원에게도 “취미를 일로 삼거나, 거꾸로 일을 취미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며 제2, 제3의 성공신화를 북돋우고 있다.

<한지숙 기자 @hemhaw75>
/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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