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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태엽이 멈춘 ‘은둔자의 땅’
기암괴석 휘돌아 흐르는 오대천·백년넘은 전나무숲 올레길…태고의 운치·멋 깃든 고즈넉함에 가슴이 아릿…
‘고려때 지은 천년고찰 월정사엔

최치원·세조·김시습 등

당대 인물과 얽힌 설화 전해오고…

알려지지 않은 옛길 풍광에

오가던 나그네도 넋을 빼앗기고…



‘산속 밤은 깊어가는데/찬 이슬이 옷깃에 스민다/자던 새는 남은 꿈에 놀라고…/진정 은거할 곳 그 어드멘가….’

조선 문인 김시습(1435~93)이 수양대군의 반정에 절망하고 세상을 떠돌다가 지은 ‘맑은 밤 오대산을 노닐며’의 한 구절이다.

강원도 평창군의 오대산은 산세가 깊고 수려해 예부터 ‘은둔자의 땅’으로 불렸다.

상원사 옛길은 호방한 기세로 오대천을 따라 계곡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자랑한다. 기암괴석이 용처럼 뻗어나간 오대천은 무릉도원마냥 넋을 빼앗는다. 옛길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전국 어느 올레길도 따라올 수 없는 멋스러움과 기품이 넘친다.

천년고찰 월정사는 최치원, 세조, 김시습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설화로 얽혀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풍광도 빼어나다. 지난주 말 강원도의 최고 절경이 자리잡은 평창군 오대산에 다녀왔다. 

강원도 평창군의 오대산은 산세가 깊고 수려해 옛날부터 은둔자의 땅으로 불렸다. 월정사(왼쪽)와 상원사 옛길은 기암괴석이 용처럼 펼쳐진 오대천 옆으로 뻗어나가 무릉도원마냥 넋을 빼앗는다. 옛길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길이지만 전국 어느 올레길도 따라올 수 없는 멋스러움과 기품이 넘친다.

전나무 병풍두른 오대산의 시작점 월정사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는 상원사 옛길의 시작점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천왕상을 지나 고려 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2층 누각 금강루가 기백을 뽐냈다. 개성의 고려성균관 입구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는 2층 누각과도 모양이 닮았다.

늦가을이 익어가는 산사는 주변의 전나무숲에 둘러싸여 푸르름을 더한다. 오대산은 특히 전나무 군락이 많다.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무학대사의 스승)가 오대산 암자에서 공양을 하려는데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스님이 들고 있던 그릇에 떨어졌다. 산신령이 나타나 스님 공양을 망친 죄를 물어 소나무를 꾸짖고 내쫓았다. 그 다음부터 오대산에는 소나무가 귀했다고 한다.

월정사는 수려한 자태만큼이나 차맛을 좋게 하는 빼어난 물맛으로 유명하다. ‘우통수(于筒水)’로 불리는 이 물은 그 빛깔이나 맛이 특이하고 무게도 보통 물보다 무거운 성질이 있다. 주로 숙성시킨 보이차로 차물을 끓여 마신다.
월정사의 암자인 상원사는 세조에 얽힌 설화로 최근 더 유명해졌다. 최근 끝난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세조가 암살 위기를 넘긴 절이 바로 상원사가 배경이다.

물론 설화는 드라마 내용과는 다르다. 설화에선 세조가 과거의 죄를 뉘우치려고 불공을 들이던 중 고양이가 바짓자락을 물고 놓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 세조는 결국 고양이 덕에 자객을 피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자연이 만든 명품 올레길 상원사 옛길

월정사 뒤편으로 가면 1㎞가량 걷기 좋은 전나무길이 나온다. 1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전나무는 경쟁이라도 하듯 하늘을 곧게 뻗었다. 유명 관광지의 메타세쿼이아숲길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운치와 멋이 넘친 전나무숲길은 인적이 드물고 고즈넉해서 멀리 나그네라도 지나가면 그대로 풍경화가 된다.

월정사 전나무길에서 시작해 회사거리, 오대산장, 상원사로 이어지는 옛길은 오대천의 변화무쌍한 풍경이 있어 결코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징검다리가 있는가 하면 고즈넉한 숲길이 있고 좁은 숲길을 나오면 들을 뒤덮은 푸르른 배추밭이 지평선까지 펼쳐지는 장관도 볼 수 있다.

길가의 풀 한 포기, 계곡의 바위 하나하나가 빼어난 산세를 빚어내며 시큼하니 뭉클거린다.

오대천의 풍경도 어디서나 쉽게 보지 못할 비경이 곳곳에 있다. 기암괴석 위를 휘감아 흐르는 힘찬 물줄기가 있는가 하면, 산을 그대로 담은 거울처럼 맑은 냇물도 있다. 냇물에서 열목어 등 각종 민물고기를 감상하다 보면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오대천에서 바라보는 오대산 자락의 자태도 태고적 신비감에 그대로 묻어난다. 단풍이 진 산자락은 전나무 군락으로 더 멋스럽다. 여우비가 온 뒤 구름이 이무기처럼 산등성이를 휘감으면 신선의 땅이라도 온 듯하다. 오대산이 오래도록 은둔자의 땅으로 불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사진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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