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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훨훨 타오르는 천불동...일장춘몽의 아쉬움
붉은 병풍에 머리만 드리워도 스르륵 잠이 들 것 같다.

옛 정인(定人)의 따스한 손길, 그 품속이 이보다 아늑하랴.

꿈속, 넓은 도토리잎에 수정 같은 옹달샘 물 한 사발 뜨고, 곱디고운 아기단풍 한장 띄워 휘휘 불며 목마름 달래보련다.

설악산은 팔도강산 중에도 단풍이 으뜸이다. 그 중에도 천불동계곡 5색 단풍이 가장 화려하고 멋스럽다.

대청봉, 중청, 소청봉에서 채화된 붉은 불길은 10월 중순이면 화채봉, 한계령, 대승령, 공룡능선을 타고 내려와 용아장성을 휘휘 돈다. 마지막으로 불길이 닿는 데가 바로 천불동 계곡이다. 천불동이 시뻘건 물이 들면 이산 저산 순식간에 번지는 봉화대 불씨마냥 비로소 설악이 활활 타오른다. 지난주 말 남한 단풍의 시작을 알리는 최고의 명산 설악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사방이 온통 붉은 바다 천불동계곡=비선대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7㎞ 코스의 중간 계곡에 이르니 산 위세나 아름다움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난 자태를 드러냈다. 사방이 기암괴석에 웅장하고 깊게 패인 협곡 사이로 폭포와 소(沼)가 연이어 이어졌다. 마치 용이 승천하듯 형상이 우렁차고 기묘하다. 속세가 아닌 선(仙)계로 접어들면 비로소 마주할 풍경이다.

여기가 바로 설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이자 계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천불동(千佛洞)이다. 천불동은 계곡 양쪽의 기암절벽이 천 개의 불상이 늘어서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신선이 누워 쉬다가 하늘로 올랐다는 와선대(臥仙臺)와 비선대(飛仙臺)를 비롯해 문주담(文珠潭)ㆍ이호담(二湖潭)ㆍ귀면암(鬼面岩)ㆍ오련폭포(五連瀑布)ㆍ양폭(陽瀑)ㆍ천당폭포(天堂瀑布) 어느 것 하나 빼놓는다면 섭섭할 일이다.

천불동은 4계절 미모가 빼어나지만 그 중에도 이맘 때가 절정이다. 단풍과 어우러지니 춤사위 추는 풍류 선비가 절로 된다.



▶유럽 중세 순례길 연상시키는 권금성(權金城)=달디단 가을 색깔의 유혹과 짙은 일장춘몽에서 깨어난 뒤 발길을 돌려 설악동으로 향하면 해발 850m의 봉우리 권금성이 나온다.

설악동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 내린 뒤, 10분여 산길을 돌면 옛 성터 하나가 보인다. 석산 위에 거의 허물어져 터만 남은 산성터다. 성터에 서니 장쾌한 경치에 청량한 산바람을 맞으며 묵은 시름도 말끔히 사라진다.

성터로 오르는 길이 80도 가파른 절벽에 기묘하고 이국적이다. 밑에서 보면 마치 등산객과 기암이 서양영화 속 순례길 행렬과도 닮았다. 앞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밑은 천길 낭떠러지. 기분이 아찔하니 마음이 설렌다.

여기엔 하나의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시대 가족을 거느리고 피난한 두 명의 장사인 권(權) 장사와 김(金) 장사가 방어할 지형물을 만들기 위해 번갈아가며 한 사람이 시냇가에 돌을 던져주면 또 한 사람은 이를 받아 밤새도록 쌓았다는 얘기다. 배경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항거한 권 씨, 김 씨라는 얘기도 있다.


▶수줍은 비경 영랑호(永郞湖)ㆍ천년고찰의 신비 화암사(禾巖寺)=영랑호는 맑은 날보다 궂은 날이 더 아름답다. 영랑호 리조트 뒤편은 마치 도시라는 느낌을 잊을 만큼 우수에 젖은 산책로가 일품이다. 호수 둘레가 약 8㎞, 꽤 긴 호반 산책로는 드라이브 길로도 손색이 없다. 고니가 여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이 운치를 더한다.

영랑호는 사방에서 보는 모습이 모두 다른 8색조 호수다. 도시풍경과 어우러지고, 자연 속에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 드는 장소도 많다. 명품 호수에 잠시 넋을 잃은 객은 미시령 옛길에서 천년 고찰 화암사를 만났다. 화암사 오른쪽에는 주먹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 모양의 작은 바위가 올려진 형상의 수바위가 빼어난 자태로 손님을 맞이했다. 맑은 날에는 송곳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울창한 원시림이 비경이고, 속초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설악의 숨겨진 전망대다.

화암사는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세운 절로 한국전쟁 때 불에 타 훗날 법당만 다시 지었다. 1990년대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

심형준 기자/cerj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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