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보다 전세계약이 먼저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이 가을로 가는 길목임을 일깨운다. 누군가에겐 풍요와 낭만의 계절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사를 앞둔 무주택 가구나 신접살림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에겐 ‘전세대란’의 계절이 코앞에 왔다는 뜻일 뿐이다.

결론부터 보자면 집을 사지 않을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계약을 하는 것이 낫다. 반전세나 월세라도 수용을 하든 아니면 원하던 지역에서 좀 더 외곽으로 나서든 더 힘들어지기 전에 결론지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까지 겹쳐 당분간은 전세난이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을 전세대란은 어디에서 오는가?=이번 가을 전세난은 이미 올 초부터 예견돼 왔다. 부동산 시장 침체 장기화로 민간 건설사들의 공급 물량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 시공능력 10위권 대형건설사의 공급실적은 총 3만533가구로 연간 공급예정 물량의 36.4%에 그쳤다. 올 초 그야말로 ‘열풍’ 수준의 부산·경남 등 일부 지역 신규 아파트의 청약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외 지역은 미분양이 걱정이었다. 쉽사리 신규 공급 일정을 세우지 못한 이유다.

수도권의 집값 하락과 거래 실종도 한몫했다. 집값이 떨어지자 집주인은 산 가격보다 싸게 팔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집을 사려는 이들은 더 떨어질 걸 기대해 지켜보겠다며 이해가 상충했던 까닭이다.

여기에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상황은 결국 잠재적인 매수 수요자들도 전세 수요자로 돌아서게 해 기존 물량을 상당 부분 소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00가구 규모의 서울 강남권 재건축ㆍ리모델링 아파트 주민들도 올가을 안에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할 상황이라 강남발(發) 전세난은 서울 전역, 더 나아가 수도권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전셋집 ‘부르는 게 값’이어도 ‘하늘의 별따기’=물량이 부족해지자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상승 지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서울에서 3.3㎡당 전셋값이 1000만원이 넘는 가구 수는 총 21만5928가구(닥터아파트 집계)로 전체 전세물량 124만여가구의 17.31%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만4501가구의 배에 달한다.

수치상 드러나는 것보다 현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청실ㆍ우성 아파트 등의 이주가 본격화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인근 은마ㆍ미도 등 주변 아파트 전셋값은 수개월새 수억원이 뛰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은마 112㎡는 올해 초 대비 1억5000만원 이상 올랐다. 이젠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했던 구로ㆍ중랑구ㆍ금천구 등의 전셋값도 오르는 상황이다.

▶집주인이 원하는 건 월세=집주인 대부분은 월세임대를 원하고 있다.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 때문이다. 요즘처럼 금융ㆍ주식시장이 불안한 상황에 전세보증금을 융통해 수익을 내기 어려우니 월세받아 이자내고 남긴다는 것이다.

▶8ㆍ18 전월세 대책, 약발 받을까?=벌써 네 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내놨던 정부는 지난달 다시 공급물량 확대를 골자로 한 전월세 대책을 세웠다.

수도권 매입임대 사업자에 집 한 채만으로 임대사업을 할 경우 양도세를 무겁게 물리던 것을 면제하고, 주거형 오피스텔도 임대사업 등록을 가능케 해 임대사업 물량을 늘리겠다는 것이 한 방편이었다.

또 주택구입 지원과 재정비 사업 시기조정 등을 통해 전세수요를 분산시키고, 전월세 소득공제 대상 확대 등 세입자 전세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대책도 가을의 전세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임대사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 다주택자들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커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출구를 마련해줬다는 비판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동산 시장이 회복돼 가격 상승 가능성이 동반되지 않는 한 임대사업자들을 유인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해법은 없나?=냉정하게 따지자면 올가을 전세대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부분의 집주인은 전셋값이라도 올려 받아 금융이자라도 챙기겠다는 입장이어서 악순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집을 얻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빨리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일부 완화해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전세난이 안정될 때까지 보금자리 주택 공급을 자제하는 등 시장부양 필요성 의견이 제기되지만 가계부채가 사상최대치인 900조원에 육박하는 등 심각한 상황에 섣부른 부동산 대책은 이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커 이래저래 묘수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

하늘은 점점 높고 푸르러 청명해져 가지만 집 문제를 둘러싸고는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시름만 깊어간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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