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뭍 사람 끌어당기는 ‘마법의 섬’
화려함 뽐내는 바다 위의 정원 거제 ‘외도’, 수백년 은둔자 동백·후박나무의 비밀정원 ‘내도’…그곳이 날 오라하네~
야자나무·종려나무가 저마다 손짓하며

서구식 건축과 정원이 어우러진 비너스가든

외도는 또 한번 내 발길을 묶고…

태풍 ‘매미’때도 살아남은 백년넘은 무궁화

산길서 마주친 고라니는 친구인 듯

내도는 원시 기억의 발자국소리 만들고…




경남 거제는 섬의 섬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인 거제 본섬(면적 378㎢)은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떠 있다.

거제의 부속도서 가운데 내도(內島)와 외도(外島)가 있다. 내도에서는 외도가, 외도에서는 내도가 지척으로 보인다. 안과 밖이라는 이름은 두 섬의 지리적 위치에서 나왔다. 선착장이 있는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舊助羅里)에서 바라볼 때 바깥 쪽에 있는 게 외도, 안쪽에 위치한 게 내도다.

애초 작명 의도와 별개로, 내(內)와 외(外)는 두 섬이 내포한 성격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외도는 그 매력을 바깥으로 꽃피우고, 내도는 그 마력을 안으로 울창하게 품었다. 화려한 야외 정원의 섬 외도에서는 동행과 함께 떠들썩하게 감탄하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포즈를 취해도 좋다. 그러나 내도에 가면 잠시 대화를 그치는 게 방법이다. 섬의 내성적 아름다움은 방문객에게 조용한 자기 성찰을 은밀히 권유하기 때문이다.

외도 본섬 전망대에서 부속섬인 동섬과 공룡섬이 내려다보인다. 외도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내도는 은밀한 마력을 안으로 숨긴다. 둘 다 거부할 수 없다. 두 섬은 N극과 S극처럼 그 나름의 자력으로 뭍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화려하게 꽃핀 외향(外向)의 섬, 외도(外島)=
외도는 개인이 소유한, 바다에 뜬 인공 정원이다. 구조라에서 해상관광유람선을 타고 15분 정도 뱃길을 달리면 나온다. 장승포, 학동리, 갈곶리 등에서도 수시로 배가 뜬다. 밖에서 보면 깎아지른 기암절벽만 보이지만 들어서면 포근한 정원이 반기는, 내강외유의 섬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외도 보타니아’ 입구가 바로 기다린다. 섬 전체가 식물원이므로 외도 보타니아는 외도의 동의어라고 볼 수 있다. 입장료(성인 8000원, 어린이 4000원)를 내고 들어서면 아열대의 식물 천국이 시야를 압도한다. 불꽃 모양으로 조경된 가이스카 향나무가 인도하는 길로 들어서면 코코야자, 종려나무, 수백년 된 동백이 저마다 ‘여기 보라’ 손짓한다. 황금사철나무, 알제리아이비, 마삭줄, 워싱턴야자수 등 이국적인 식물들이 여기를 바다에 부유하는 ‘딴 세상’으로 만든다.

큰 알로에처럼 보이는 것이 용설란이다. 백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전설. 아열대에 서식하는 용설란은 온대에선 50~6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 반세기마다에야 한 번씩 꽃을 보여주는 이 도도한 식물은 일단 꽃을 피우려면 최고 10m 높이까지 꽃대를 뻗어내며 거드름을 피운다. 식물 중 가장 꽃대가 긴 종류다. 마침 최근에 그 꽃대를 올리고 있다. 희귀한 용설란 꽃을 직접 보는 행운을 차지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이국적인 정취에 폭 빠져 걷다 계단을 오르면 비너스 가든이 나온다. 영국 버킹엄궁 후원에서 테마를 가져온 이곳은 서구식 건축과 잘 조경된 정원이 어우러진 명소다. 캔디나 소공녀가 수풀 사이로 뛰어나올 듯하다. 정원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빠르게 바다 안개(海霧)가 섬을 넘는 장면도 이곳의 비경이다.

비너스 가든을 뒤로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면 섬 뒤편의 제1전망대에 닿는다. 외도 본섬에 부속된 동섬과 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다. 동섬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된 공룡 섬을 거느리고 있다. 반대편의 제2전망대에서는 북서쪽으로 내도를 조망할 수 있다.

외도 관광에는 빠른 걸음이 필수다. 배가 다시 출발하는 시간까지 여유가 1시간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승선하면 7분쯤 뱃길을 가르고 한 무더기의 돌섬 해금강(명승 제2호)이 나타난다.


▶비밀의 정원 숨긴 내성(內省)의 섬, 내도(內島)=
식물과 기암을 축제처럼 꽃피운 외도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시퀀스 촬영지이기도 해서 일본 관광객들까지 북적여 한바탕 시끌벅적하다. 내도는 그 반대다. 구조라항에서 조그만 도선을 타고 10분쯤 항해하면 내도 선착장에 닿는다. 10가구에 15명이 살 뿐인 작은 섬(면적 0.256㎢). 겉보기엔 ‘여기 뭐 보잘게 있겠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화려한 외도를 먼저 봤다면 더욱더.

이곳의 매력은 도보로 70분쯤 소요되는 탐방로 산책에 있다. 곧게 뻗은 삼나무 군락의 시원시원함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른다. 수백년 이곳에서 은둔해온 동백과 후박나무, 소나무 등 각종 식물이 좁다란 산길을 감싸안고 있다. 탁 트인 전망은 가끔씩만 허락된다. 그 순간순간에 쥐의 귀를 닮은 서이말등대와 외도 등을 볼 수 있다. 여긴 일본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수평선께로 신기루처럼 대마도가 보인다. 조오련이 대한해협을 종단할 때 이곳 해역을 출발지로 삼았었다고.

돌아 내려가는 길은 개모시 군락이 자리한 쪽으로 잡았다. ‘후두두둑’ 침묵을 깨는 소리에 놀라 눈을 드니 야생 고라니가 도약해 달아난다. 산길 곳곳에서 이런 야생 고라니와 흑염소를 자주 맞닥뜨린다. 나도 야생의 일부가 된 듯, 원시의 잊힌 기억이 그들의 발자국 소리에 문득문득 깨어난다.

탐방로 바깥 은밀한 곳에는 수령 백 년을 훌쩍 넘긴 무궁화나무가 있다. 13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인만 받는다면 기존의 최고령 무궁화(수령 110년)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는 역사적인 수목이다. 태풍 매미 때 넘어졌지만 끝내 살아남았다고 한다.

최철성(55) 내도 주민자치위원장은 내도를 일컬어 “생각하고 깨우칠 수 있는 섬, 차분하고 깊이가 있는 섬”이라고 했다. 인공이 들어서지 않은 원시림은 ‘네 안에 이런 아름다움을 가꿔보라’고 침묵의 죽비질을 한다.

거제=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




샛바람 소릿길…솟대 언덕…

구조라 마을서 숨바꼭질하다

구조라 마을은 숨바꼭질하기 좋은 곳이다. 이곳엔 외도와 내도로 연결되는 배를 타는 선착장이 있다. 구조라해수욕장도 이곳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숨은 매력은 마을 안 깊숙이 들어가봐야 안다. 일단 바다를 등지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형형색색의 재기 넘치는 담장 벽화가 마을을 겹겹으로 두르고 있다. 바닷속 물고기들, 물고기를 말리고 배를 띄우는 평화로운 어촌 풍경, 고양이와 토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들이 동심 어린 그림으로 채색돼 있다. 귀여운 담장을 돌고 돌다 보면 작은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거기 샛바람소릿길 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다.

이 안엔 여름이 없다. 울창한 시릿대가 터널을 이뤄 꼭 한 사람씩만 지나가기 좋은 좁은 길을 감싼다. 시릿대는 내륙에 사는 큰 대나무와 달리 어른 손가락 굵기만큼 가는 대나무다. 여기 촘촘히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들어서는 순간 햇빛도 더위도 바깥 세상 얘기다. 한낮에도 컴컴하니 혼자 들어가긴 좀 그렇다.

땀을 식히며 5분쯤 걷다 보면 반대편 출구가 나온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길 양편으로 띄엄띄엄 솟대가 솟아 있다. 길을 따라 하늘 향해 열린 언덕으로 오른다. 이 언덕이 ‘언덕바꿈’이라는 곳.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대와 노란 해바라기 밭이 어우러져 장관이다. 동쪽으로는 구조라항(港)이, 북서쪽으로는 구조라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인다. 해수욕장 쪽으로는 그네가 하나 설치돼 있어 앉아볼 만하다. 해수욕장 쪽 연안에 떠 있는 윤돌도는 효자섬이라고도 불린다. 그 섬에 효자 윤씨 형제가 살았는데 뭍을 오가는 어머니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그 징검다리가 아직도 썰물 때면 언뜻언뜻 보인다고 술회하는 마을 어르신의 말이 귓가에 잠자리로 앉는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