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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폭들은 왜 아이패드를 들었나
무시무시한 연장들고 세력다툼 벌이던 ‘형님’들 쇠퇴

첨단IT장비 무장 승부조작·인터넷 도박 등 ‘지능적 조직’으로 변신





한 프로축구 선수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승부조작 사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 사건의 배후에는 ‘북마산파’라는 거대 조폭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들은 돈이 궁한 스포츠 선수와 짜고 승부조작을 일삼으며 돈을 모았다. 이들의 ‘연장’은 더 이상 회칼과 쇠파이프가 아니다. 아이패드, 스마트폰이 그들의 주무기다. 첨단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한 신조폭들이다. 물리력 행사도 이제는 각목보다는 묵시적인 협박이나 간접 폭행 등에 그친다. 신조직 폭력배들은 사이버 세상을 찾아가거나 유통업, 건설자재 납품업 등에 종사하면서 합법적인 사업체를 가장해 돈을 벌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신조폭들은 ‘회칼’ 대신 ‘아이패드’를 손에 들며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직폭력배’라는 단어보다는 ‘조직지능범’이라는 단어가 이들에게 더 어울린다.


▶ ‘연장’ 들고 설친다고? 조폭 맞아?=
과거, ‘조직폭력배’들의 상징은 각목이나 쇳파이프, 야구방망이 등 속칭 ‘연장’이었다. 영화 ‘비열한거리’ ‘화려한 인생’등에서 나오듯 차에서 내린 조직의 중간 보스가 부하들에게 “연장 챙겨라”라고 말하는 것은 조폭의 클리세였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사이 연장을 사용하는 조폭은 한국에서 ‘멸종’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서울 마포경찰서 강력 4팀 임성빈 경사는 “경찰이 되면 평균 30년을 근무하지만, 조폭과 직접 마주치는 경찰은 10명 중 한 명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용어로 ‘조폭추종세력’이란 게 있다. 경찰이 가진 자료에는 등록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 파에서 조폭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다. 얘네들이 더 무서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 1팀 송석하 팀장도 “80ㆍ90년대 조폭들은 살이 찌고 덩치가 있는 게 미덕이었다. (살 찌우려고)방 안에 가둬놓고 계속 먹이고 재웠다. 거기에 검은 양복을 입혀 놓고 ‘행사’를 나갔다. 한 번 나가면 20만~30만원, 많게는 40만~50만원씩 챙겼다”고 회상하면서도 “지금은 그런 모습이 완전히 없어졌다. 조직원이라고 잡아놓고 보면 힘깨나 쓰게 생긴 놈들도 있지만, 평범해 보이는 녀석들이 더 많다. 전통적인 분류 기준상 ‘조폭’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고 말했다.

조직 폭력배들은 사이버 세상을 찾아가거나 유통업, 건설자재 납품업 등에 종사하면서 사업체를 가장해 돈을 벌고 있다. 조폭 수사를 지능계에서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판이다.

이 같은 현상은 경찰청에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 2008년, 5411명이나 검거돼 그 중 1468명이나 구속되는 등 기세를 떨쳤던 조직폭력배들은 2009년 4645명 검거에 1094명 구속, 2010년에는 3881명 검거에 884명이 구속되는 등 점점 세력이 약해져 가고 있는 상태다. 경찰청 강신걸 폭력계장은 “2011년 현재 경찰이 관리하는 조직폭력배는 전국에 220개파, 5451명 정도로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지난 노태우 정권 때 ‘조폭과의 전쟁’과 2008년 10월부터 4달간 진행된 ‘서민경제 괴롭히는 조직폭력배 단속 강화’ 작전 이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폭은 자취를 감췄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아이패드에 아이폰…까도남 조폭 시대?= 그렇다면 2000년대 들어서 나온 조폭들의 새로운 전략은 무엇일까? 이들은 손에 ‘연장’ 대신 아이패드, 스마트폰을 잡고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이천세 부장검사)는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인터넷 언론사에 허위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작성ㆍ배포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조직폭력배 등을 적발했다. 이들은 증권사 직원, 주식실전투자대회 우승자 등을 포섭해 소규모 자금으로 쉽게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상장기업을 골라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이들 기업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린 후 고점에서 되파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주가 조작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자금력이 되는 큰 조직들의 얘기다. 이쯤 되면 ‘조직지능범’이라 불러야 할 판이다. 자금력 있고 첨단 기술과 장비에 능한 이들은 프로축구 승부조작, 주가 조작 등 ‘지능범죄수사팀’에서나 다룰 범죄에 몰두한다.

그에 반해 조직원이 10~20명 미만인 조직의 경우 쇼핑몰 사기, 불법(인터넷)게임장. 사채업, 인터넷 도박 등을 이용해 ‘푼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조폭들도 ‘양극화’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전통적인 돈벌이 수단이었던 유흥업소 매출이 감소하면서 ‘생계를 위해’ 돈 되는 일이면 어디든 뛰어들고 있다. 이마저도 조직에 속한 개개인이 자기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을 벌이다 경찰에 끌려오는 경우다. 개인적으로 한 일이지만 조폭들은 ‘조직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특정범죄가중처벌 등의 법률 제5조의 8항 ‘단체등의 조직’)을 받는다.

서초경찰서의 한 강력팀장은 “요즘 조폭들은 바다이야기도 하고, 중국에 서버를 둔 사행성 게임 같은 것도 하며 간신히 돈을 벌어 살아간다”며 “큰 조직의 경우 주가조작, 대형 도박사기를 해서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경우 40대가 넘어가면 할 게 없으니 월세방에서 살면서 도박장에서 꽁짓돈이나 받아쓰는 신세가 된다. 한마디로 말해 돈버는 조폭은 100명 중 1명꼴이라고 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청은 현재 조폭들이 합법적인 사업체를 가장해 돈을 벌어들이거나 자동차 자해공갈단 등 보험범죄, 불법게임장, 인터넷 도박 등을 통해 돈을 번다고 파악하고 있다. 강 계장은 이와 관련해 “경찰은 조직 폭력배들의 싹을 뽑아내기 위해 이들의 자금줄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분석하고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출소자들을 중심으로 집중 관리하면서 이들이 건전한 직업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corp.com




손 씻고 세상 속으로…

그때 그 보스가 사는 방법


과거 서울에는 ‘3대 패밀리파’라 불리는 폭력조직이 있다.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범서방파, 이동제의 OB파 등이 그것이다. 이밖에 서울 내 지자체별로 구로동파, 영등포 중앙파, 시흥 진성파, 관악 이글스파, 강서 남부동파, 광명 사거리파, 부천 식구파 등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조직폭력배는 1990년 노태우 정부가 민생 치안 확립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세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이전처럼 패싸움이나 조직 차원에서 연장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대신 개인 사업을 통해 각자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예컨대 재건축 등 이권 사업에 투자를 하고, 지분을 받는 등 대외적으로 합법적인 활동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지인의 부탁으로 주식 투자로 본 손실을 받아주려고 트로트가수를 협박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조양은(61)은 1970년대 양은이파 두목으로 활동했다. 지난 1975년 당시 서울지역 폭력조직 가운데 최대 규모였던 신상사파를 기습 공격한 ‘명동 사보이호텔사건’을 주도한 그는 19년 넘게 수감생활을 거치면서 개과천선해 사회에 복귀하려 했으나, 번번이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되풀이하면서 예전의 거대 폭력조직을 이끌던 카리스마를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는 것이 경찰 쪽의 전반적인 평가이다.

범서방파를 이끌던 김태촌도 출소 이후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청소년 선도 등 사회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지난 2006년 영화배우 권상우에게 일본 팬 사인회를 강요하며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최근 김 씨는 조직후배 모친상에 ‘국제청소년범죄예방교육원 원장 김태촌’이라고 적힌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달 모친상으로 ‘왕년의 주먹’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나모 씨는 서울 청담동에서 고급 식당을 운영하며 유명 인사들을 단골 손님으로 끌어모으며 폭넓은 인맥을 쌓고 있다. 탈세 혐의로 구속되기는 했지만, 과거 전력과는 거리 두기를 하며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찰서 강력계 관계자는 “여전히 폭력조직 세력이 주로 유흥주점에 진출해 관리인을 자기 사람으로 심는 등 활동을 하고 있지만 조직 차원에서 관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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