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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들은 왜 세상밖으로 나섰나...성매매 여성들“우리는 명품가방도 못사나”분노 폭발…집창촌 철거 맞선 인권·생존권 시위로 확산
“ ‘동전시위’라뇨? 우리는 돈으로 명품 가방도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인 겁니까, 억울할 뿐입니다….”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1층 명품관에서 벌어진 이른바 ‘성매매 여성들의 10원 시위’가 내내 화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은 이렇다. 타임스퀘어 옆 집창촌 성매매 여성들이 100원짜리 동전과 50원짜리 동전 수만개를 가져가 100만원이 넘는 명품 가방을 사겠다고 소란을 피우며 영업을 방해했다는 것.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준법을 가장한 ‘변종시위’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17일 영등포 집창촌에서 만난 이들은 당시 상황이 우발적 사태였다고 항변했다. 시위란 말에 무척 억울해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영등포 타임스퀘어 옆 집창촌을 찾았다.
▶그들은 왜 ‘동전’으로 명품을 사려 했나=“그날은 동료 2명의 생일이었어요. 비록 성노동자지만 우리도 예쁜 명품에 혹하는 20대 여성이거든요.”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성매매 여성 김한별(여ㆍ가명) 씨는 ‘시위’가 아닌 생일 선물 구입차 명품매장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루이뷔통’과 ‘구찌’ 직원 모두 상품을 보여주고 포장을 해줄 때까진 친절하고 우호적이었다. “160만원짜리 가방을 고르고 이 중 100여만원을 동전으로 결제하겠다고 했죠. 처음엔 난처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러나 이내 동전계산기를 공수해 오더군요.”
상황은 순간 역전됐다. 김 씨는 “매장 직원들이 우리가 성매매 여성임을 알아채면서 순간 얼굴을 바뀌었어요.”
루이뷔통 측에서는 본사와 통화 후 동전결제가 어렵다고 했단다. 구찌는 루이뷔통에서 동전결제가 끝나면 기계를 가져다 계산을 해주겠다며 무작정 2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이들은 격분했다. “도대체 왜 계산을 안해주냐”며 동전봉투를 쳤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비닐은 이내 터지면서 수만개의 동전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지난달 중순 의도적으로 준비한 ‘까나리액젓’ 시위와는 달리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매장 직원의 신고에 경찰이 출동했다. 시민들의 눈에는 성매매 여성들이 동전시위를 하는 것으로 비춰졌고 생일선물을 구입하려던 이날 이들의 쇼핑은 ‘동전시위’로 명명됐다.
오해의 여지도 있다. 이들은 왜 하필 동전으로 결제하려고 한 것일까. 김 씨는 “15일이 일요일이라 은행들이 문을 닫았고 신용카드도 돈벌이가 안 돼 정지된 상태였다”면서 “동전결제가 안 된 이유는 결국 우리가 성매매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돌연 세상 밖으로, 왜?=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 그럼에도 영등포 집창촌 여성들과 업주들은 왜 세상 밖으로 나왔을까. 한 마디로 먹기 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단속이 강화되고, 집창촌 주변에 대한 개발이 진행되면서 손님이 확 줄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영등포 집창촌은 관할 영등포경찰서가 지난달 1일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손님이 뚝 끊긴 상황. 매출은 당연히 없다. 서울 5대 집창촌을 불릴 정도로 성행했던 업소 수도 현재 30여곳으로 이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성매매 업주 송모 씨는 “지난 3월 말 영등포경찰서로부터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모두 나가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면서 “보통 이사를 가도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볼 시간은 주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냥 길바닥으로 나가라는 소리”라며 하소연했다. 그는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가 들어오면서 경찰의 압박이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17일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약 6시간에 걸친 집회와 과격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일대를 들썩이게 하였다. 마찰을 빚었던 루이뷔통과 구찌 매장은 집회 시작과 동시에 영업을 종료했다.
영등포 집창촌 성매매 노동자 대표인 장세희(39ㆍ여) 씨는 “우리도 조용히 살고 싶다”면서 “원하는 것은 하나다. 살길을 찾을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이곳이 재개발될 예정인 만큼 용산 집창촌처럼 재개발 시점까지 나갈 시간을 주든지 아니면 합당한 보상금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씨는 “사람들은 유사 업소에서 돈 벌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그건 정말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다. 유리로 오픈된 장소인 집창촌과는 달리 그런 음성적인 곳에 벌어지는 성매매의 경우 여성이 쥐도 새도 없이 죽어도 모른다. 말그대로 개죽음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해외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단다. 장 씨는 “최근엔 호주로 많이 가는데 브로커 사기가 극성이라 이조차도 쉽지 않다”고 했다. 장 씨는 “우리도 인권이 있어요. 가족도 있고요. 동물 취급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계속 싸울 겁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성매매, 그 부침의 역사=국내에 근대식 성매매가 시작된 건 일제치하인 지난 1904년 10월. 일본공사관이 서울에서 매춘업을 ‘허락하면서부터다. 딱 100년 만인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돼 국내 모든 성매매 행위가 금지됐다.
과거에도 성매매가 금지된 적은 있었다. 1945년 광복 직후 공창제는 폐지됐고, 미군정에서 설치한 남조선 과도입법위원회에서는 사창제마저 폐지시켰다.
성매매는 5ㆍ16 군사정권에서 공식 부활했다. 당시 군사정권은 윤락행위방지법과 관광법을 통해 집창촌을 묵인했다. 집창촌 역사의 시작이다. 이로써 전국에는 104개의 집창촌이 ‘특정지역’으로 분류돼 운영됐다. 주로 주한미군과 기생관광을 온 일본인을 대상으로 ‘외화벌이’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렇게 생겨난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 미아리, 청량리, 용산역, 천호동, 영등포 등 5곳이다. 이곳을 정리하기 위한 작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활기를 띤다. 시장은 2002년 10월 윤락가 정비 선언을 했고, 2003년 11월에는 이 지역 일대를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후 서울 윤락가는 서울 도심 재개발사업, 뉴타운사업 등과 맞물려 대부분 아파트단지로 거듭났다.
서울 대표 집창촌이었던 청량리 일대도 2016년까지 5개의 초고층빌딩과 공원, 광장 등이 들어선다. 용산역 집창촌도 용산역세권 개발이 추진되면서 70여개에 달하던 성매매업소는 현재 3개 업소만이 남아 있다. 천호동 집창촌도 천호뉴타운 사업에 따른 철거를 앞두고 약 30여개만 남은 상황이다. 김수한ㆍ황혜진 기자/hhj6386@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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