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레의 시민’과 만난 연꽃…공존의 세계 열다
퇴적층·고원 의미 ‘플라토’

스스로 진동하는 장소 꿈꿔

작가 14명 미술관 곳곳 탐색

공간 재해석·길들이기 시도

삼성가 미술관 새단장

3년만에 ‘혁신의 공간’으로





로댕의 대표작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 위로 진분홍색 연꽃 384개가 둥글게 매달렸다. 재미(在美) 설치미술가 김수자(54)의 작품 ‘연꽃 제로지대’다. 그리곤 불교의 티베트 성가와 이슬람의 성가가 동시에 울려퍼진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조각(로댕의 작품, 김수자의 연꽃)과 사운드는 작품의 중심, 즉 만다라처럼 둥근 원에서 융합되며 관객에게 공동과 공존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사방이 반투명 유리로 뻥 뚫린데다, 천장 높이가 8m에 달해 여간해선 작품이 돋보이기 어려운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의 글래스 파빌비온(유리전시장)이 작가 김수자의 상상력에 의해 재탄생했다. 김수자의 지극히 장소특정적인 이번 설치작품은 로댕갤러리가 이제 단순히 ‘근대조각의 시조’ 오귀스트 로댕(1840~1910)에게 헌정하는 공간이 아닌, 현대미술을 담는 열린 공간임을 말해준다.

그렇다. 로댕갤러리가 변신했다. 바뀐 이름은 ‘플라토(Plateau)’다. 삼성미술관 리움 측은 지난 3년간 비워두었던 서울 태평로의 로댕갤러리를 ‘혁신의 공간’으로 다시 선보인다. 이로써 2008년 삼성특검 이후 중단됐던 리움의 미술관 사업은 완전히 정상화됐다.

새 이름 ‘플라토’는 ‘퇴적층’ ‘고원(高原)’을 가리키는 용어지만 전시공간의 이름이 됨으로써 결과물이 쌓인 고정된 곳이 아닌, 끝없이 재탐사가 이뤄지고 스스로 진동하는 장소를 지향한다. 즉, 이제까지 쌓아온 거장의 성과는 물론이고, 앞으로 우리 미술계가 축적해갈 예술적 성과물을 새 시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보다 신선한 공간으로 꾸려간다는 복안이다. 그리하여 미술가에겐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은 고지로, 감상자에겐 고양된 예술적 감흥을 경험하는 신천지가 되길 희망한다. 

그 첫 전시로 ‘Space Study’전이 마련됐다. 글자 그대로 ‘공간탐구’전이다. 1999년 개관 이래 로댕갤러리는 새로운 실험과 의미있는 노작을 소개하며 현대미술의 중요 공간으로 커왔다. 이번 전시는 5일 ‘플라토’로 재개관하는 로댕갤러리의 공간과 장소적 의미를 새롭게 탐구한 작품이 대거 출품됐다.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는 ‘추억의 장소’이자 ‘새로운 도전의 공간’인 플라토에서 다양한 공간연구를 시도하며 저마다 흥미로운 결과물(총 38점)을 내놓았다. 

진분홍색의 연꽃 384개를 사방이 유리로 된 로댕의 글래스 파빌리온에 매단 김수자의 설치작품 ‘연꽃-제로지대’. 모든 것을 둥글게 포괄한 연꽃환은 개인과 공동의 공존을 되새겨본 작품이자, 로댕갤러리에서 ‘플라토’(高地)로 새롭게 변신하는 공간을 재해석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제공=plateau]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물리적 환경인 전시공간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간을 파괴하거나 새롭게 체험했다. 개중에는 공간을 일시적으로 소유하고, 그로부터 특이성의 공간을 만들어냄으로써 과거의 익숙함(기시감)과 생경함이 놀랍게 교차토록 한 작가도 있다.

젊은 작가인 김도균 장성은 정재호는 플라토의 공간을 섬세하게 탐색하고 측정해 미지의 공간과 마주했을 때 느낄 법한 일종의 공간공포를 세련되게 극복해냈다. 김도균은 우리가 미처 눈길을 주지 않았던 옛 로댕갤러리 곳곳, 이를테면 벽의 이음면이나 대리석 조각의 모서리 등을 포착했다. 김수자 김민애 Sasa(44)는 플라토의 공간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역사와 장소성, 기능을 재해석하고 확장한 개념적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안규철 박준범 김무준 정소영은 플라토의 공간을 과감히 해체했다. 이를테면 안규철은 플라토의 넓은 전시장에 판재로 나무집을 짓고, 그 안에 식물을 잔뜩 심어 일종의 낙원을 만들었다. 그리곤 사방이 막힌 나무집에서 식물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정소영은 2m 크기의 입방체(화이트 큐브)를 아예 해체하는 급진적 행위를 펼쳤다. 파괴된 벽체는 바닥에 주르르 펼쳐지며 마치 자연의 풍경처럼 변모했다. 작가는 파괴된 공간이 ‘소멸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작가들은 관찰ㆍ측정ㆍ구성을 통해 공간을 길들이는가 하면, 의미화한 장소를 저마다 독특하게 재구성했다. 또 공간의 사회학적 전망을 탐구하기도 했다. 14명 작가의 참신한 실험과 모색을 통해 옛 로댕갤러리는 ‘플라토’로 우리 앞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부대행사로 ‘작가와의 만남’과 인근 직장인을 위한 ‘10minute talks’(매주 수요일)가 곁들여진다. 전시는 7월 10일까지. 입장료 일반 3000원. 1577-7595

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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