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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혁명 현장 강원도를 가다> 3無에 대한 분노의 힘, 정국의 새 캐스팅보트로...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아래 늙은 부처)이라고? 이젠 순진한 강원도 사람 아니래요. 우리가 진신(바보)이나? 거짓말만 귀따굽게 들었는데...앞으로 큰 일을 할라면, 우리한테 물어봐야 될기래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기좋게 비웃은 강원도의 선거혁명 뒤에는 지난 60년간 ‘3무(無)’ 즉, 무시 무관심 무대접에 진저리친 도민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때론 안보논리로 극우보수파와 여당의 파수꾼으로 내몰렸고, 때론 “잘해주겠다”는 말에 언젠가는 약속을 지키겠지 하면서 마냥 기다려보기도 했다. 삼척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57)씨는 “보자보자 하니 너무하는 것 아니나. 우리도 충청도 사람들 한테서 마이(많이) 배왔다(배웠다)”면서 그같이 말했다. 동해시에서 횟집을 하고 있는 장모(48)씨는 “누구는 처넣고 누구는 봐주고, 우리가 모르는줄 아나”라면서 중도하차한 이광재 전지사에 대한 동정을 표하기도 했다.

지금 강원도민들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더욱 무시당한다’는 진리를 깨우친듯하다. 뿔난 강원도민의 표심은 강원도의 힘이 되어 정국의 새로운 캐스팅보트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줬다.

여론조사때엔 적당히 대답하다 기표소에서는 본심을 표현하는 강원도 식 ‘선거혁명의 힘’이 발휘된 것은 이광재 전 지사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이다. 바보라는 뜻이 감춰진 ‘감자바우’, 언제 굴러내릴지도 모를 바위아래서 태연히 독경하는 늙은 부처같은 심성, 원시적 화전민의 순진함을 내포한 ‘비탈’...‘무던함’ 투성이의 강원도민답지 않은 분노의 투표가 정가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경춘선을 달리는 차창 밖 산비탈은 신록으로 새옷을 갈아입느라 침엽수의 짙은 초록과 활엽수의 옅은 카키빛이 병치혼합돼 있었다. 엄기영측 강릉 불법 전화홍보, 최문순측 불법문자메시지 전송 등 공방전 속에서도 엄 후보의 승리가 예견되는, 4.27 전장에서 가장 재미없는 게임일 것이라는 선입견속에 선거 관전보다는 봄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27일 오후6시30분 춘천 적십자사에 마련된 소양동 제2투표소 유권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순식간에 깨졌다.

인근 보험사의 20~30대 직원 네댓명이 부리나케 투표소로 뛰어들어가더니, 현업에서 은퇴한 조모(61)씨가 뒤를 따랐다. 투표를 마친 조씨는 기자가 접근하자 잠시 살피더니, 익명을 약속하자 속내를 대놓고 털어놨다. 그는 “맨날 찍어줘도 푸대접이다. 아니 무대접이다. 희생만 강요한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처럼 강원도도 힘이 있어야 한다. 도민의 힘을 짊어질수 있는 사람한테 찍었다”고 말했다. 그는 낮에 급한 볼일이 있어 일처리 다 하고 저녁약속 가기전에 투표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송모(여)씨는 “강원도로 이사온지 석달됐다. 인심좋고 풍경 좋은데 대학때 놀러왔을때와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면서 투표의 화두를 ‘변화’에 두었음을 내비쳤다. 안내 자원봉사를 하던 성수고 학생 홍성주군은 “해질무렵 갑자기 바빠졌다. 점심때엔 대학생 형 누나들도 꽤 왔다”고 전했다.

강원도 주요도시의 투표율은 오후7시 이후 10%안팎 급등했다. 유권자가 가장 많은 원주에선 전체투표자의 10%가 넘는 9800여명이 막판 1시간에 몰려고 춘천에선 7300여명이 마감직전 투표소를 찾았다.

도청옆 한림대생들도 절반이상은 투표에 참가했다고 한다. 컴퓨터공학과 3학년 김모양은 “선거때가 되니, 몇달전 TV드라마에서 ‘청년실업의 책임이 투표를 하지 않고 권리를 내팽개친 청년 스스로에게 있다”는 대사가 새삼 떠올랐다”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투표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지도 낮은 최문순 후보는 인구 많은 춘천,원주,동해,속초를 석권하고 강릉만을 내줬다. 올림픽 유치를 희구하는 평창도, 군사지역 화천,양구,인제도, 이 전지사의 텃밭 정선도, 총선 못지않은 66%의 투표율을 보인 양양도 최후보를 선택했다. 출향 도민들의 부재자 투표신청은 무려 3%에 육박하는 사상최고치였다. 재보선 평균투표율과 이날 강원도에서 보인 투표율 간 10%포인트 가량의 격차는 새로운 도지사 최문순의 몫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새 지사를 맞은 28일 춘천의 거리는 흐린날씨 속에서도 삼삼오오 선거후일담과 웃음소리로 넘쳐났다. 강원도민 답지 않은 재잘거림에는 통쾌함도 묻어난다. “최지사 촌스런 생김새, 강한 눈빛, 진짜 달라진 강원도 사람 같지 않아?” 그들은 또 어떤 혁명을 준비할지, 짙은 초록인지 옅은 카키빛인지 이젠 그 본색을 알수가 없다. 최지사는 당선일성으로 “강원도 자존심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춘천=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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