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체르노빌 원전사고 25년>잿빛으로 변한 도심…아파트 달력은 아직도 1986년
피난주민 마카레비츠 가족 고향방문으로 본 비극의 현장
가는 곳곳마다 검문소

수시로 방사선량 측정


우여곡절 끝 도착한 집

25년전 물건 그대로 방치

교실엔 4월26일 출석표만…


이곳은 천국이었는데

씁쓸한 회상만 가득히…


“프리피야트는 항상 활기에 넘치는 도시였는데….”

25년 전 쫓기듯 집을 떠나야 했던 마카레비츠 가족은 잿빛 도시로 변해버린 프리피야트(Pripyat)를 보고 이같이 한탄했다. 이들 가족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 2월 원전수습 재원 마련을 위해 내놓은 ‘체르노빌 관광상품’을 통해 금단의 땅, 체르노빌을 다시 밟았다.

마카레비츠 가족은 사고 당시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슬로건 아래 1970년 체르노빌 원전 근로자들을 위해 지어진 특별도시 ‘프리피야트’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1만4000가구, 5만명의 주민이 거주했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는 23일 마카레비츠 가족과 동행하며 이들에게 닥친 재앙의 순간을 보도했다.

마카레비츠 가족이 다시 체르노빌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특별 여권이 필요했다. 체르노빌에 들어서서도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거쳐야 했고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높아 수시로 방사선량을 측정해야 했다. 체류기간도 3일을 넘기면 안 됐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아파트에는 25년 전 물건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벽에는 1986년 달력이 아직 붙어 있었고 아들 예브헨이 고사리손으로 그렸던 그림도 색이 바랜 채 바닥에 나뒹굴어 있었다. 

체르노빌 사고 25년 만에 처음으로 프리피야트 시를 방문한 마카레비츠 씨 가족이 아들이 다녔던 학교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보이스오브아메리카]

마카레비츠 부부는 체르노빌에서의 추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바실 마카레비츠는 원전 건설현장에서 근무했고 아내 나디야는 병원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이들 부부는 “프리피야트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젊은 사람이 많아 도시는 역동적이었고 근처에는 숲과 강이 있어 아이들 키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말했다.

1986년 생후 6개월이었던 딸 이반나는 이제 스물다섯이 됐다. 아들 예브헨은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상태였다. 예브헨은 “체르노빌에서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지만 원전사고 이후 계속해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반나는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던 아기 침대를 보고 눈물을 지었다. 예브헨은 다니던 초등학교에 들러 선생님이 기록한 성적표를 보고는 웃음을 지었다. 성적표에는 ‘예브헨 마카레비츠: 3, 3, 3, 5’라고 기록돼 있었다. 또한 교실 한쪽에서 발견된 4월 26일자 출석표는 사고 당일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주민들의 일상을 대변해줬다. 나디야는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브헨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5월 1일 노동절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카레비츠 가족은 자신들의 보금자리였던 아파트를 떠나면서 거실벽에 현재 살고 있는 키예프 집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크게 적었다.

이들은 “혹시 우리처럼 이웃이 방문해 이 메모를 볼지도 모른다”며 “꼭 다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체르노빌 원전사고?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6분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를 말한다. 국제원자력 사고 평가기준 ‘레벨7’로 현재까지 발생한 원자력 사고 중 최악의 사고로 기록돼 있다.

체르노빌 사고는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달리 인재(人災)였다. 원자로의 가동중단에 대비한 비상발전기 실험을 하다가 원자로의 증기가 폭발했다. 사고 당시 31명이 사망했고 이후 5년간 피폭 등의 영향으로 9000여명이 숨졌다. 현재까지 직간접 피해로 인한 사망자 수가 98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원자력발전소 주변 30㎞ 이내에 사는 주민 9만2000명은 모두 강제 이주됐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유출에 따른 유전자 변형으로 43만명이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고 토양 등 생태계 파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 유해한 방사성 물질이 충분히 제거되려면 대략 9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당시 원전 실험을 책임졌던 기술자 아나톨리 댜틀로프(당시 55세)는 1987년 소련 법정에서 ‘중대한 운영상의 실수’라는 죄명으로 10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피폭 후유증으로 사고 발생 9년 만에 사망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