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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종, “이준을 검사로 임명하노라”...짧고 굵은 검사 이준
‘헤이그 밀사사건’의 주역 이준 열사가 구한말 부패척결에 투신했던 검사(檢事)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검찰은 이미 문헌고증작업을 거쳐 검찰 역사의 한 자취로서 이준 검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벌여왔으며, 1999년 2월호 검찰 내부 소식지인 ‘검찰가족’을 통해 이준 검사의 업적을 기리는 특집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대검은 헤이그밀사사건 104주기인 18일 고종 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부패한 친일 관료에 당당히 맞섰던 대한제국 제1세대 검사로서 이준 열사의 숭고한 뜻과 정신을 이어가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검찰은 2005년 5월 이준 검사의 부정부패 척결 정신을 기리고 특별수사부문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 ‘스타급’ 검사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이준 검사상’ 제정을 추진한바 있다.

검찰 및 관련학계에 따르면, 1895년 개설된 법관양성소를 제1기로 졸업한 이준 열사는 이듬해 한성재판소 검사보로 임명됐다. 10년이 지난 1906년 고종 황제에 의해 평리원 검사로 임명된 그는 조신(朝臣)들의 불법과 비행을 파헤치다 임관 1개월만에 면직되고 만다.

이 검사는 이후 독립협회 평의장 역할을 맡은 다음, 대한보안회를 조직해 일제의 황무지 불하 취소운동을 전개했고, 1906년 6월 의금부의 후신으로 대한제국의 최고 사법기관이 된 ‘평리원’ 소속 검사로 재임용됐으며, 한달뒤 특별법원 검사로 임명됐다.

이 검사는 이듬해인 1907년 3월 친일파 법부대신 이하영을 탄핵하다 결국 정치적 역풍속에 또 면직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검사가 비록 정치적 바람에 의해 면직되긴 했지만 그 기개를 높이 평가해 같은해 7월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로 파견했다.

이것이 바로 이 준 검사가 대한독립의 열사로서 국민들의 기억속에 각인되는 바로 그 헤이그밀사사건이다.

<홍성원 @sw927>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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