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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와 열정이 넘치는 청춘
거침없는 문장, 짜릿하고 아름다워

<에브리맨>, <휴먼 스테인>의 작가 필립 로스의 책은 처음이다. 강렬한 외침으로 다가오는 <울분>(2011,문학동네>는 제목처럼 강렬하다.


소설은 1950년 대 초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유대교 집안의 아들 마커스에 관한 이야기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부모를 돕는 성실한 청년이다. 또래의 아이들처럼 일탈을 꿈꾸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 아들이 발을 내딛을 세상은 불안했고 위험이 가득했다. 그런 과도한 애정이 마커스를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만들었다는 걸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미쳤다. 소중한 외아들이 성인이 되어가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삶의 위험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걱정 때문에 미쳐버렸다. 어린 소년이 성장하고, 키가 크고, 부모보다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 그때는 아이를 가두어둘 수 없으며 아이를 세상에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바람에 겁에 질려 미쳐버렸다.’ p. 20


대학에서도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아주 사소한 선택으로 인해 한 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게 삶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건 옳았다. 그런 부모의 기대를 알기에 모범적인 대학생활을 유지하려 했다. 클럽에 들어가지 않고, 여자 친구도 사귀지 않으려 했고, 아르바이트와 강의만 열심히 들었다.


그러나 대학은 수많은 유혹(이를테면 사랑과 자유)를 뿌리쳐야 할 시험대였다. 피끓는 청춘에게 사랑은 다가왔고 마커스는 혼란스럽다. 아름다운 올리비아가 마커스를 뒤흔다. 올리비아를 향한 열정을 감당할 수 없다. 그녀가 이혼한 부모를 두었고 자살을 기도했으며 방탕한 소문이 돌아도 상관없다. 올리비아를 시작으로 마커스는 혼돈에 빠진다.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채플, 시시콜콜 자신을 간섭하는 아버지 모두 싫었다. 그는 태풍의 눈이었다.


분명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문제는 조언자가 너무 많았고 마커스가 흡수하기엔 거대한 애정이란 점이다. 때마침 맹장수술로 입원하자 찾아온 어머니는 올리비아와 만난다. 어머니가 어떤 말을 할지 마커스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그녀와 헤어지겠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건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마커스의 섣부른 오만이었다. 결국 스스로 울분을 다스리지 못한 그의 삶은 불행으로 마감한다.


독립된 자아로 온전하게 설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버지의 조언대로 살았더라면, 채플로 인해 교수와 대립하지 않았다면 마커스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마커스는 완전을 위해 자신의 불완전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다. 청춘을 즐기는 일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내 생각을 고집하는 일이, 과연 그걸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필립 로스는 거침없이 문장으로 마커스의 감정을 묘사했다. 그건 통쾌했고 알싸하고 짜릿하며 아름다웠다. 두려움 없이 써 내려간 느낌이랄까. 소설 속 배경과 지금은 60면이란 차가 있지만 경제상황이나 시대적 상황을 제외하곤 뜨거운 몸부림은 언제나 같다. 간절하게 원하는 그것에 다다르지 못해 분해하는 모습은 청춘의 상징 아닐까.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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