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아, 봄날…초록 물결 가슴에 일렁인다
경전선.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이 철도는 오래전 일제시대에 건설됐다. 구불거리는 철로 탓에 느릿느릿 움직이는 경전선은 오히려 그 ‘느림’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봄날, 느린 경전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봄날의 청보리밭을 찾아 떠난다.

광주 송정역을 출발하는 순천행 열차는 4칸짜리 꼬마 기차다. 과연 얼마나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 기차는 사람을 몇 태우지 않고 또 다시 길을 떠난다. 텅 빈 기차 안이 한적하다.

열차는 남쪽을 향해 달리다 보성역, 득량역을 지나 조성역으로 향할 때 미끄러지듯 몸을 틀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왼편으로는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고 오른편으로는 초록 보리밭이 가득 매운 득량만 간척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보리밭 감상 최적지는 득량만 방조제길=득량만의 보리밭을 가까이서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은 득량만 방조제 위를 걸어간다. 득량만 간척지에는 동쪽의 고흥반도와 보성을 연결하는 길이 약 5㎞의 방조제가 시원스레 이어진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드넓은 보리밭이 청색 물결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방조제 길을 따라 왼쪽에 수로가 이어지고 갈대가 우거져 운치가 있다. 또, 갈대숲 사이로 수변데크와 목교, 산책로 등이 잘 형성되어 있어 기차 여행자나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해 오는 방문객에게 또 다른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수문이 설치된 제2 수문교가 나오고, 그 수문교 옆으로는 물새들이 한가로이 떠다니는 호수가 펼쳐진다. 바로 감동저수지다. 붕어, 잉어, 불루길, 가물치 등이 자주 나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득량만의 또 다른 명소는 강골마을이다. 영화 서편제와 태백산맥, TV 예능프로그램 등의 단골 촬영지가 된 강골마을은 전통의 멋과 소박한 정서가 살아 있는 곳이다. 19세기부터 하나 둘 지어지기 시작한 30여채의 한옥에는 툇마루와 댓돌에서 마당의 우물, 군불 때는 아궁이까지 우리 고유의 생활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봄날의 보성에는 온통 푸름이 들어찬다. 차창 밖으로 본 청보리밭의 정경.

마을 내 이금재 가옥, 이용욱 가옥, 이식래 가옥, 열화정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특히, 마을 뒤편 대숲에 둘러싸인 열화정은 19세기 중엽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100년 넘는 세월의 흔적이 깃든 강골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싸리담장을 끼고 돌길을 따라 굽이진 고샅길을 오르면 수많은 선비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멋스런 누마루와 소박한 연못,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열화정을 만날 수 있다.

강골마을의 좁게 난 돌길, 시원스런 대숲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여유롭게 전통마을에 찾아온 봄 햇살을 즐겨보자. 저녁에는 한옥에서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고, 엿만들기나 다도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미리 정보를 알아 가면 더 많은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보성의 명물 녹차밭은 새 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하고=한편, 보성의 상징인 녹차밭은 이 무렵 새 옷으로 갈아 입기 시작한다. 200여m에 이르는 삼나무길을 지나 대한다원 녹차밭으로 들어서면 코 앞으로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둘러봐도 좋고 전망대 벤치에 오랫동안 머물며 녹차밭이 주는 평온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녹차 전망대까지 오르면 녹차밭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보다 더 정상으로 향하면 바다전망대가 있는데 청명한 날이면 산 너머 바다까지 구경 가능하다. 전망대를 내려와선 녹차 한 잔 혹은 녹차아이스크림을 음미해 보는 것도 괜찮다.

이번에는 각종 CF와 드라마 촬영지로 잘 알려진 회천리의 녹차밭, 제2 대한다원으로 가보자. 첫 번째 밭의 경사진 모습과 달리 평지에 시원하게 펼쳐진 이 녹차밭은 사진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촬영 포인트다.

녹차밭 가까이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율포 해변이다. 율포 해변은 백사장 길이가 1㎞ 정도로 그 규모는 작지만 드넓은 갯벌과 일출에서 일몰까지 모두 볼 수 있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바다 산책지로 제격이다. 게다가 보성군에서 운영하는 율포해수녹차탕에서는 녹차탕과 해수탕을 번갈아 즐기며 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니 녹차 밭을 오래 걸어 지쳤던 몸을 풀어줄 수 있다.

또한 지척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배경이 되었던 벌교도 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 홍교를 비롯해 소설 속 실존인물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실제 사용했던 필기도구들까지 꼼꼼하게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현대 역사의 굴곡들을 그려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벌교의 뻘밭에서 캐낸 싱싱한 꼬막 맛은 덤이다. 보성을 가는 김에 한 번쯤 방문해도 후회할 일은 없다.

<김재현 기자 @madpen100> madpen@neraldm.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