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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들 못하랴, 사막도 견뎠는데…

기사입력 2011-03-17 14:48

“마라톤 풀코스 150회 완주…어우동 옷 입고 현지 신문에

가락시장서 친구 만날땐 김포서부터 뛰어가”


“고비사막에 62년만에 장마 온 날

비로 패인 계곡 300개 넘게 건넌 적도”


배낭여행 30개국…신혼여행은 히말라야 트레킹…

그녀들에게 참가 자격은 차고도 넘쳤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허걱, 사하라도 다녀오셨어요?”

‘소개팅남’으로부터 온 문자메시지.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남들은 대단한 도전에 성공했다며 칭찬을 쏟아내지만 뭇 남성들에게 섭씨 50도의 사막에서 뜀박질을 한 여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지 사하라 레이스에 참가한 이후 소개팅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2003년 첫 출전 이후 국내에서 사막레이스에 참가한 ‘여성’은 스무명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 이 중 절반인 2500만명이 여자라고 치면 대한민국 0.0001%인 그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녀들은 왜 사막을 뛰었을까.

지난달 24일 광화문에 이 드센(?)여자들이 모였다. 매번 대회 때마다 참가하는 여자들은 한두 명뿐으로 여자들끼리 모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막의 여우’들은 만나자마자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서로에게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머, 사막 같은 데서 뛰게 안 생기셨는데.” 예쁘고 아니고를 떠나 뽀얀 얼굴이라든가, 독하지 않은 선한 표정이 그랬다.

2006년 사하라, 2007년 고비 레이스를 완주한 홍현분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은 아줌마들이야 모르겠지만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정말 사하라 같은 데를 갔다온 거예요?”

홍현분 씨는 2006년 사하라레이스에서 전체 여자 2위를 차지했다. 그는 국내외 아마추어 여자 마라토너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다. 매주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한다. 지난 2002년 처음 뛰기 시작해서 지난해 11월 7일 뉴욕 마라톤에서 150회 완주를 기록했다. 당시 150회를 기념해 어우동 한복을 입고 완주를 하면서 뉴욕 현지 신문에 나기도 했다.

연습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는 “사막레이스가 먹을거리 등 배낭 10㎏ 정도를 매고 뛰어야 한다고 해서 가기 전까지 쌀 10㎏을 지고 뛰었다”며“지금  김포공항 근처에 사는데 친구와 가락시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면 한 3시간 전에 나와서 뛰어간다”고 한다.

장선희(맨 아래 중앙) 씨가 지난 2003년 여자로서는 사막레이스에 처음
으로 참가했으며, 시계방향으로 홍현분, 고신애, 나종운, 유은영, 박미란
씨다. 가운데는 지난해 사하라레이스를 완주한 박영선 씨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홍 씨와 같이 2006년 사하라, 2007년 고비를 뛴 박미란 씨는 산 마니아다. 등반한 산만 400여개 . 대한민국의 산이란 산은 다 다녀본 셈이다. 고비사막에서는 시각장애인을 도와 같이 뛰었다. 고비사막에 62년 만에 처음으로 장마가 들었다는 때였다. 그는 “비가 쏟아지면서 생긴 계곡을 300개도 넘게 건넜다”며 “지금 하는 일만 좀 안정이 되면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다른 사막레이스에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선희 씨는 오지레이서로 유명한 유지성 씨와 책을 기획하려다 고비레이스에 참가하게 된 얼떨결에 뛴 케이스다. 지금은 철인 3종에 푹 빠져 있다. 

사단법인 사랑의열매에서 일하는 고신애 씨는 소아암 환자였던 아이와 함께 뛰었다. 암을 완치하고 처음 나서는 도전을 같이한 것. 아이는 자기 인생에서 항암치료 때보다 레이스를 완주하는 게 더 어려웠다고 말했을 정도로 힘든 길이었다. 그는 “당시에는 다음날 뛸 생각에 매일 밤이 멈췄으면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좋은 경험이 주어졌던 것이 힘이 되고 있다”고 돌아봤다.

2009년 이후 참가자부터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초창기 참가자들이 마라톤 마니아가 주를 이뤘다면 이들은 “그냥 사막이 보고싶어서” 혹은 “재미있을 거 같아서” 식의 좀 대책없는 기분파들이다. 울트라는커녕 마라톤 풀코스 한 번 뛰어보지 않고 덜컥 참가 신청부터 했다.

뛰든 걷든 해야겠지만 사막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면 충분했다. 박영선 씨와 유은영 씨, 모두 마라톤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그간의 여행이나 경험을 들어보면 참가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박영선 씨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배낭여행이 30개국이 넘는다. 지금의 남편도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만났다.

그는 “신혼여행으로는 2주간 태국과 네팔의 히말라야 산속에서 지냈으며, 몇 년 전엔 안나푸르나 봉우리를 가이드와 포터없이 두 번째로 트레킹을 갔다”며 “고비사막을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베테랑 마라토너들도 물집으로 고생하는 데 반해 박영선 씨는 양 발에 물집이 하나씩만 잡히고 끝났다. 가기 전 훈련을 2~3시간씩 동네산을 뛰면서 맨발로 했다고 한다. 

가장 막내지만 경험으로 치면 유은영 씨도 만만치 않다. 고등학교 때 백두산을 시작으로 대학교 들어와서는 남극 탐사대로 한 달여간 남극에서 지내다 왔다.

사막레이스를 갔다 왔다고 하면 다들 묻는다. 자기들 같으면 돈을 줘도 안 가겠는데 왜 가냐고. 이들은 그냥 웃는다.  다 뛰어보면 스스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완주까지 쉬웠든 어려웠든, 그녀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버릴 것 없는’ 경험이었다는 거다. 사하라레이스 참가비 마련을 위해 3년간 월 30만원씩 돈을 모았던 나종운 씨는 “레이스 자체가 순수한 즐거움이었고, 완주하고 나서 딸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어떤 상황이 되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도 얻었다.

청년 실업시대에 취직이 하고 싶다면 사막레이스에 참가하라. 사막레이스를 완주한 뒤 취직 혹은 이직 성공률은 100%를 자랑한다.

사장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막도 갔다 왔는데 뭘 못 하겠냐고.

<안상미 기자 @hugahn>
hug@heraldcorp.com




‘사하라레이스’는

음식·침낭 넣은 10㎏ 배낭메고

6일간 총 250㎞ 걷거나 달리거나…

얻을수 있는 건 오직 물 뿐



사막레이스는 오지레이스의 한 종류다.

해마다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많은 대회가 열리지만 레이서들 사이에 꿈의 도전이라고 불리는 것은 미국 ‘레이싱더플래닛’이 주최하고 있는 4개 오지레이스 대회다.

이집트의 사하라 레이스, 중국의 고비사막 레이스, 칠레의 아타카마사막 레이스가 있으며, 이 3개 대회를 완주했을때 마지막 남극 레이스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다른 운동경기처럼 한 해 안에 완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극까지 4개 대회를 완주하면 오지레이스 그랜드슬래머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총 7명이 명예의 전당인 ‘The 4Deserts Club’ 멤버로 올라가 있다. 그랜드슬래머이자 오지레이서로 유명한 유지성 씨가 레이싱더플래닛의 한국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참가 신청을 대행한다

사막레이스는 서바이벌 대회다. 보통 생각하는 마라톤과 달리 참가자들이 자신이 먹을 음식과 침낭, 구급약품 등 20여종의 필수 휴대품이 들어간 약 10∼15㎏의 배낭을 메고 뛰어야 한다. 


주최 측으로부터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침, 저녁으로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제공하며 코스 중에는 체크포인트마다 1.5ℓ의 물을 받을 수 있다. 레이스 중 숙박은 주최 측이 마련해준 천막에 각자 침낭을 펴고 자게 된다.

캠프에는 간이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만 레이스 코스 도중에는 화장실이 없다. 사막 모든 곳이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고 알아서 해결하면 된다.

사막레이스의 관문이라고 하는 사하라레이스는 하루에 40∼100㎞씩 6일 동안 총 250㎞를 달려야(혹은 걷거나) 한다.

<안상미 기자 @hugahn>
hu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