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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망망대해를 홀로 떠다닐때…등을 빌려준 애견 막달이…
김나리
‘막달이’는 우리 집 개의 이름이다. 옆 동네에서 두 달 된 어린 진돗개를 분양한다기에 품에 안고 데려온 지 8년째다. 막달이는 그동안 망망대해를 나 혼자 떠다닐 때 내가 너무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등을 빌려주었다. 나는 ‘막달이’라는 작품에서 그런 막달이와 나를 표현하고 싶었다.

막달이는 한 살이 될 때까지 낮에는 밖에서 놀다가 밤에는 내 이불 위 발치에서 잠을 잤다. 한 살 되던 어느 날, 목줄이 풀려 신이 난 막달이는 뒷산으로 한달음에 뛰어갔다가 그만 덫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앞집 아저씨가 산토끼들이 자신의 밭에 자꾸 내려와서 잡을 요량으로 놓은 덫이었는데, 덫의 무지막지한 크기며 기세가 멧돼지라도 잡을 판이었다.

섣불리 막달이를 발을 빼내려 했다간 발이 잘릴 판이어서 덫 자체를 분해, 해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막달이의 발은 무사했으나 그날 이후 막달이와 내겐 한적한 시골 마을의 산도 더는 안전하지 않았다. 

김나리 作 ‘멀리서 온 사람’. 세라믹. 51×56×65㎝. 2010

양평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나는 매일 아침이 두렵다. 어김없이 아침마다 고라니, 고양이, 개, 토끼 등 수많은 동물의 로드킬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일 잔상이 남는다. 이 짧은 길에서도 그러한데 전국적으로 따지면 그 수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을 보며 매일 출퇴근하니 좋겠다”고들 하지만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사람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없는 곳, 사람 외에 다른 종의 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지 않는 곳, 수많은 개구리와 뱀들이 말 못하고 작다는 이유로 눈에 띄지도 않은 채 길 위 바퀴에 깔려야 하는 곳, 매일 뉴스를 장식하던 확실하고 유일한 대책, 즉 반경 3㎞ 이내 가금류 몇만 마리 살처분 등등…. 

김나리의 자소상 ‘막달이와 나’. 세라믹. 76×63×54㎝. 작가 자신과 ‘막달이’라는 이름의 개를 하나로 연결한 작품은 세부를 과감히 생략한채 본질만 압축해전한다. 무심한 듯 냉랭한 얼굴과는 달리, 팔로는 막달이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외롭고 팍팍한 세상에서 서로 하나임을 보여준다.

하긴 이곳 양평의 동네 어귀 어디에도 차를 위한 길만 있을 뿐, 인도가 따로 있는 걸 본 적 없으니 산짐승과 물짐승, 날아다니는 것들과 기어 다니는 것들을 위한 배려는 얼마나 먼 나라의 이야기인가?

느리지만 천천히 흐르는 물이 풍성하고 맑다고, 곧고 빠른 강과 길이 수많은 생명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하는 날이 언제쯤 올 것인가? 우리가 죽인 수없이 많은 약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신음과 원혼으로 가득한 이 땅에….

글ㆍ조각=김나리(작가)


▶작가 김나리(44)는 한국교원대와 서울산업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도예 기법으로 입체 작업을 하는 작가는 ’N을 위한 비가(悲歌)’라는 타이틀로 작년 말 서울 가회동 이목화랑에서 초대전을 하기도 했다. 김나리는 이 세상에서 가엾게 희생당한 사람들과 동물 등 생명체를 흙으로 빚은 다음, 불로 굳힌다. 몸체는 생략된 채 형형한 눈빛을 간직한 두상들은 작가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 

생명체들은 때론 작가와 한 덩이가 되기도 하는데 안타깝게 죽어간 생명체와 스스로가 유기체처럼 연결돼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경기대)는 "김나리의 작품은 그들의 얼굴을, 존재를 잊지 않으려는 간절한 제스처다. 그들의 아픔에 연민과 애도다. 이는 망실된 얼굴에 바치는 헌사"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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