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히 왔다 금방 녹는 눈처럼…자취도 없이 스러지는 우리네 인생이여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 ‘3월의 눈’
연극계 살아있는 전설

백성희·장민호에 헌정 공연

시골마을 고즈넉한 한옥 배경

삶의 여정 담담히 그려

배삼식 작·손진책 연출

11일부터 열흘간만 무대에




“명동 어느 오래 묵은 밥집에서 두 분을 처음 뵈었을 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하나의 영상을 떠올렸다. 볕 좋은 어느 집 툇마루. 나는 그 고즈넉한 빛 속에 두 분을 앉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고즈넉함은 현실을 초월하여 우뚝 서 있는 견고한 성채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박하고 살풍경한 현재의 한가운데 흔들리며 위태롭게 놓여 있는 한순간이다.”

배삼식 작가가 기억하는 이 첫 만남. 그가 떠올린 영상을 배경으로 하고 앉은 ‘두 분’은 배우 백성희와 장민호다. 국립극단이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을 기념해 연극 ‘3월의 눈’을 무대에 올린다.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작인 ‘3월의 눈’은 11일부터 딱 열흘간 공연된다.

배삼식 작가가 이 첫인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럼에도 백성희는 “다른 초연작들은 연습하면서 수십 번을 고쳐가며 대본을 새로 인쇄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졌다”고 평했다.

두 원로배우의 헌정 공연이란 의미가 있는 만큼 ‘3월의 눈’은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다. 연극은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한옥을 배경으로 한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무대에 담기 위해 무대 디자이너 박동우는 소설가 상허 이태준이 머물렀던 성북동의 수연산방(壽硯山房)을 기반으로 고택을 만들어냈다.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6ㆍ25 전쟁까지 겪어내며 이 집을 지켜온 노부부는 손자의 빚을 대신 갚아주느라 한옥을 내놓기로 한다. 근현대사를 묵묵히 견뎌온 집과의 이별을 앞두고 지나간 세월을 담담히 풀어놓는 노부부의 대화는 감동을 남긴다. 


그 노부부를, 그들이 살아온 집처럼 한국 연극사를 무대에 온몸으로 새겨넣은 두 배우가 연기한다. 배우 장민호는 올해 87세, 백성희는 86세를 맞는다. 연극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자신들의 이름을 딴 극장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부부 연기를 해온 두 배우의 호흡은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완성된다. 배우 장민호는 그 과정을 “우리는 억지로 대사를 외우지 않고 극중 배역을 분석한다”며 “연습을 할수록 나 자신은 없어지고, 어느 순간 그 인물이 돼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이 치열하고 힘겹지만 둘이 함께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50년 넘게 신협과 국립극단에서 호흡을 맞춰온 두 배우와 함께 배우 오영수, 박혜진, 이호성, 박경근, 최승일 등이 출연한다.

잠깐 내렸다 금방 녹아버리는 ‘3월의 눈’처럼 연극은 어딘가에서 왔다가 어디론가 가는 삶의 여정을 담담히 그린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 박힌 극장에 선 두 배우의 연기는 객석에 진한 여운으로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윤정현 기자/ hi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