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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기경님 나눔정신을 기부받았죠”
“아무래도 안구 적출 수술을 하다가 추기경님의 나눔 정신을 기부받았나봐요.”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장 주천기(55) 교수에게 지난 2009년 2월,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적출 수술 집도는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추기경이 선종한 바로 다음날, 기부의사에 따라 그의 안구를 적출하는 수술을 하면서 주 교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해 11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프리카 케냐로 난생 처음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이게 다녀와보니 기분이 참 뿌듯한 거예요. 평생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빛을 새로 찾아줬을 때 의사로서 느끼는 보람과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그는 이번엔 국내 의료계에서 가장 상금 규모가 큰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상금 5000만원 중 세금을 제외하고 받은 실 수령액 3900만원을 전액 가톨릭중앙의료원 시과학연구소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은 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이 주관하는 상으로 이번이 3회째 시상이다. 지금까지 고 이종욱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등 5명이 이 상을 받았다.

그는 국내 안과 분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명의다. 이번에 받은 상도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 제정 이후 학술상으로는 첫번째다(그 전엔 공헌상ㆍ봉사상이었다.). 국내외에 발표한 270여편의 논문을 통해 백내장ㆍ굴절ㆍ각막이식 등의 진단과 수술에 대한 최신 학문을 선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백내장의 대가다. 2000건 이상의 백내장 수술을 하며 실력을 쌓았고 100편이 넘는 그의 논문이 미국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돼 있다. 안구 내 고정장치(수정체 확장 고리)를 개발해 장영실상을 수상했고 특허도 12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각막 적출 수술 전이었다면 상금을 다른 데 썼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미 수술을 집도한 다음인걸요. 이 상금으로 실명(失明)을 예방하고 벤치사이드(연구실)의 안과 지식을 베드사이드(병실)로 이전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는 게 더 보람이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요즘 그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은 봉사활동이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 연변에 가서 9명에게 무료 백내장 수술을 해주고 왔다. 또한 매년 두번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무료 개안수술을 하고 있다. 이 모두가 김수환 추기경 각막 적출 수술 집도에 따른 변화라고 말한다. 그는 “원래 각막의 50%는 수입에 의존했어요.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이 기부 사실이 알려진 후 각막을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한 사람의 기부가 이렇게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감명을 받으면서 주 교수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길에 이미 깊숙이 들어섰다.

김재현 기자/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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