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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아, 아빠 딸’에 이 소설 ‘붉은 손가락’ 있었다
딸들은 늘 말했다. “괜찮아, 아빠 딸.”이라고. 모두가 남 몰래 울고 있었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가족애를 보여줬고, 멀리 돌아 사랑을 찾았고, 잊을 뻔했던 우정을 재확인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드라마였다. 18일 종영한 SBS ‘괜찮아, 아빠 딸’은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뻗어간다. 감내하는 것이 익숙한 큰 딸 애령(이희진)과 철부지이기만 했던 막내딸 채령(문채원)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가지 않아도 될 길을 가게 됐다. 그 험난한 길은 당연히 가시밭길이었으며, 그 가시밭길에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딸들은 조금씩 성장했다.

사건의 시작은 의도도 목적도 분명치 않은 하나의 악의에서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하나의 ‘백(가방)’으로 시작한 사건일 수도 있으며,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짝사랑과 그로 인한 모욕이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사건은 '의도된 계획'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절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순수한 악의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두 딸의 아빠(박인환)는 사고를 당했고, 의도된 계획에 가담했던 한 남자(최덕기 역, 신민수)는 죽었다. 사건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된 죽은 남자의 형(최혁기 역, 최진혁)과 막내딸 채령은 이후 사랑을 쌓아간다. 한 가족에서 또 다른 가족들로 이야기가 뻗어가며 ‘가족의 의미’를 한 번 더 보여준 드라마였다. 이렇게 파생되는 관계에서 중심이 됐던 것은 앞서 언급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는 온통 착한 사람들 투성이였던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악함을 보여준 한 남자가 있었다. ‘채령을 좋아해 시작된 일이었다’고 주장한 박종석(전태수)이 그 주인공이다. 종석은 모든 일을 저지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반성’이라고는 모르는 거대 로펌의 외아들이다. 돈으로 학위를 사고, 돈으로 사랑을 사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누군가를 골탕먹이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채령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라 믿지만 종석의 마음에 채령은 사랑이 아닌 가지지 못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모든 일을 저지르고도 그의 부모는 아들을 지킨다. 그릇된 부정(父情)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건 부모는 감싸기만 했다. 어긋나버린 맹목적인 사랑은 더이상 아들을 통제할 수가 없다.

도저히 현실 속 인물이라 믿기 어려운 ‘무신경함’을 바탕으로 한 ‘악의’에 찬 종석 캐릭터에서는 한 편의 소설이 읽힌다. 바로 국내에서도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등으로 유명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이다.

‘붉은 손가락’은 중학생 아들이 저지른 하나의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부모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단골 등장인물 가가 형사의 두뇌게임을 그렸다. 아들을 둔 부모는 은폐를 위한 방법으로 치매에 걸린 부모를 이용한다. 자식을 향한 부모들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 조건이 없기에 맹목적이다. 맹목적인 사랑은 자칫 어긋난 방향으로 흐른다. 가족은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끌어안고 덮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와 가족 안에서 묻게 되는 가족의 또 다른 의미가 이 소설 안에서 그려진다. 

추리소설답게 긴박한 두뇌 플레이를 펼쳐가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모든 사건은 정리된다. 중학생 아들은 그제서야 말한다. 일말의 반성과 가책도 없이, “모든 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라고.”어긋난 부모의 사랑은 이렇게 마지막을 맺었다. ’괜찮아, 아빠딸’의 이상한 캐릭터 종석 역시 그랬다. 4년 전 최은기의 공판에서, 4년 뒤 사건이 다시 접수된 상황에서 “모든 게 다 아빠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시 아무런 반성도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없다. 헌신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가족애를 그려갔던 드라마에서는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물었다. 그 과정에 등장한 한 캐릭터는 가족 안에서의 일그러진 사랑의 결과이기도 했다. ’괜찮아, 아빠딸’에서 읽힌 소설 ’붉은 손가락’이었다.

<고승희 기자 @seungheez>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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