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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박스>엄동설한 반팔 라운딩이라니…
가평의 한 그룹사 골프장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입니다.

한창 추운 겨울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룹사의 상무님이었던 그분, 그 추운 겨울날 얇은 반팔티를 하나 입고 나오셨습니다. 제 기억에 그날은 무지무지 추운 날이었거든요. 1번 홀 이동 후 저는 여쭤봤습니다. “안 추우세요?” “전혀~ 시원하네~.”

사건은 12번 홀 라운딩 도중 일어났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죠. 눈뿐만이 아닌 눈과 섞인 진눈깨비. 아시는 분들은 아시죠, 눈보다 진눈깨비 맞을 때 얼마나 추운지를. 고객님들도 덜덜 떠시는데 상무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라운딩을 즐기셨습니다.

희한한건 동반자 분들이 가만히 계시는 거였죠. 상무님 왈(曰) “내가 열이 좀 많아”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휴대폰에서 음악을 트시는데 그때 나온 게 에픽하이의 음악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푹 젖은 반팔에 에픽하이의 음악을 틀어놓은 채 카트에서 고개로 리듬을 타시며 흥얼거리시는 고객님의 모습을요. 멋졌답니다. 결국 진눈깨비가 너무 와서 16번 홀 정도에서 종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반자들이 다 들어가신 후 상무님께서 “메리 크리스마스~” 라며 작은 립스틱을 주셨습니다. “지현 씨, 내가 내년에 인사 못할 거 같아서 먼저 인사해요. 휴장 기간 잘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아, 정말 멋있었습니다.(이런 고객님을 기억 못할 수가 있을까요?)

그다음 겨울 상무님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지요. “상무님 안녕하셨어요?” “아! 지현 씨 오랜만이야”하며 웃음. 솔직히 저를 기억하시는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제 명찰을 한 번 보시고 인사하시더라고요. 반갑게 인사드리고 있는 사이 우리팀 고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팀 고객님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지현 씨, 박ㅇㅇ 상무 알어?” “네, 작년 겨울에 라운딩했었거든요.” “저 자식 특이하지? 한겨울에 반팔 입고 다니고.” “네, ㅎㅎ.”

웃는 저에게 이야기해주신 게 “저 녀석이 어렸을 때, 산삼이랑 백사를 잘못 먹어서 몸에 열이 많아서 그래.” “그래서 여름에는 한국에 못 있고 러시아 지사에 가 있잖아. 한국에 겨울에만 들어와.” 헉, 그래서 한겨울에 그리 반팔티를 입고 계신 거였습니다.

아직도 추운 겨울에 눈비가 오는 날이면 상무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 겨울이 돌아왔으니, 올해도 한국에 들어오셨겠죠?

상무님, 아직도 반팔 입으시나요?

<쎄듀골프서비스연구소 김지현 기자(전 가평베네스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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