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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정의란 무엇인가’ 제대로 읽기 : 능력주의
운명에 내맡기는 능력은

부당한 불행을 전제

‘제로섬게임’ 지배하는 사회

능력주의 역시 불의에 불과



최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하 ‘정의’)가 서점가에서 약진하고 있다. 샌델 스스로는 공동체주의자이지만 공동체주의를 긴장감 있게 소개하기 위해 칸트, 롤즈, 드워킨의 자유주의를 먼저 심도 있게 다루고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정작 공동체주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깊게 언급하고 있지 않다. 결국 ‘정의’의 주 내용은 자유주의가 된다. 실제로 하버드 1학년생의 4분의 1 이상이 듣는 교양강좌지만 그 강의를 통해 더 유명해진 것은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롤즈의 ‘정의론’이다.

철학자 칸트의 도덕적 이상은 인간이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즉 외부의 강제에 굴하지 않음은 물론, 자신의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욕구로부터도 자유롭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따르게 될 정언명령으로 ‘보편적 법칙에 부합하게 행동하라’를 제시했다. 하지만 칸트는 보편적 법칙의 내용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철학자 롤즈는 그 법칙의 내용을 채워보려고 시도했다. 처음으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모인 인간들(원시적 인간)이 자신의 능력과 결함들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베일’ 뒤에서 어떤 제도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를 상상해보았다. 그 가상실험에서 롤즈는 우선 원시적 인간들이 ‘정치적 평등’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또 최약자층이 최대한의 이익을 보는 경제적 분배에 동의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성공의 욕심보다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롤즈는 모두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소위 최약자-최혜분배원리에 동의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롤즈는 ‘원시적 인간’들이 능력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능력은 운명에 의해 우연히 분배된다. 능력주의는 사람들을 운명에 내맡긴다. 능력주의는 항상 일부의 우연한, 그래서 부당한 불행을 전제로 한다. 각자의 운을 모르는 상황에서 불운에 대한 걱정이 행운에 대한 욕망보다 강하므로 모두가 불운을 최소화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능력주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능력대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상대평가’와 ‘제로섬 게임’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전문직 숫자 제한,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착취). 복지론자들이 말하는 ‘의자앉기 게임’의 비유가 진실로 맞아떨어지는 사회이다. 우리나라에서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유행인 것은 지배규칙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잘살기’란 말이 유행인 이유는 지배규칙은 ‘줄세우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복지를 말하기 전에 능력주의의 불의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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