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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셜인터뷰> 천정훈 MIT 석좌교수

  • 기사입력 2011-01-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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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공대생이 의대 갔기에 심장수술 가능…이런 교육이 한국에도 필요”
예산 인색한 한국정부 프로젝트는 한계 … 우리기업들, 이제 벤치마킹에서 창조로 가야”


메카트로닉스 분야의, 한국이 낳은 세계적 석학 천정훈 박사. 그는 현재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석좌교수다. 내노라하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의 자문을 받기위해 줄을 서고 있고, 우리의 글로벌시장 경쟁자인 싱가포르는 연간 2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아예 그에게 ‘싱가폴 내 MIT’ 프로그램을 운용하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을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우리나라 이공계 위기, 그리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한 소신이 뚜렷했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그를 국내 언론사로는 처음 헤럴드경제가 만났다. 그리고 한국 이공계 위기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는 지금 이공계의 위기라고 한다. 이공계가 인기가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구조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이공계의 위기는 그쪽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도 있다고 본다. 예전에 이과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현실이 어려우니 정부에 지원을 많이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이과를 선택하면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생각을 하게 된 듯 싶다.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다. 정원을 무한정 늘린 정부도 책임이 크다. 정책적으로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정원을 늘렸다. 정원이 희망자보다 많아진 것이다. 이공계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몇 년 만이라도 정원을 줄이고 재능이 있고 희망하는 사람만 뽑아 잘 가르치면 된다. 실력있는 인력이 부족하면 취업률도 올라가고 대우도 좋아진다. 요즘 대기업에 이공계 CEO들이 많다. 이런 점을 선전해야 한다.”




- 우리와 미국 MIT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내가 기계공학을 지원했을 때는 단순히 성적대로 대학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의대보다 공대의 합격점수가 높았기 때문에 성적에 맞춰 공대를 택했다. 그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교사들의 진로지도가 절실하다고 본다. 반면에 MIT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성적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그런 점이 한국 학생들과 다른 면이다. 어떤 분야든 영원히 잘 되는 경우는 없다. 대학교와 전공을 정할 때 부모가 간섭해서는 안된다. 향후 30년을 책임질 부모는 없다. 학생에게 무엇을 강요하거나 간섭하려 해선 안된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직접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런 학생들이 모인 곳이 MIT이다.”

천 교수는 처음부터 공부를 위해 해외로 나간 것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국내 건설관련 용역회사에서 일을 했다. 해외 기업들과 일할 기회가 있었고, 우연히 캐나다 기업 한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이민 수속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미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그 탓에 자의반 타의반 캐나다 오타와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게 됐고 이후 박사과정을 끝낸 후 현지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기술 뿐 아니라 경영에도 참여할 기회도 얻었다. 그때 경험을 그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 해외 대학과 한국 대학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나.

“대학의 탄생배경이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미국에선 처음 대학을 세울 때 귀족이나 성직자 자녀 교육이 목적이었다. 졸업하자마자 취직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이라 자연히 전인교육이 주를 이뤘다. 반면 한국은 6.25이후 미국 차관으로 주립대 모델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학부가 직업을 위한 전문학교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학부에서 법학과 의학을 가르치는 것은 대학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다. 학부에서 교양을 쌓고 본격적인 전문교육은 대학원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심장수술이 시작된 것은 학부에서 공학을 공부한 학생이 의대에 진학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술하는 동안 피를 순환하게 해야 하는데, MIT 출신 의대생이 심장수술이 이뤄지는 동안 피를 순환시키는 기계를 발명한 것이다. 미국에선 문학을 전공한 친구들도 의대를 간다. 이것이 미국과 한국 대학 교육의 차이점이다.


- 한국에도 법학, 의학 전문대학원이 생겼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기회를 계속 부여한다. 한 번 잘못 선택하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다. 한국에서는 한번 선택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나중에 다른 데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도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의학이나 법학 전문대학원이 생겼다는 것은,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도 좋은 일이다. 전문대학원이 안정을 찾기까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천 교수는 국내에 나름 지인이 많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는 MIT 동료로서, 또 멘토로서 잘 알고 지낸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도 안면이 있다. 몇몇 대기업에 기술적 자문도 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일하는 시스템이 달라 공동 작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왜 공동연구가 어려운가? 예전에는 한국과 전기차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일단 프로젝트 규모가 작다. 시간과 시스템도 안맞는다. 특히 정부가 정해준 대로 하면 MIT와는 일하기 어렵다. 약 15년 전 모 국책연구소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2차전지나 연료전지가 없었지만, 이런 것들이 개발됐다고 전제하고 어떤 차를 만들 것인가 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국에 자동차연구소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연구소 내에도 재료나 기계 전공자들이 따로 있으니 프로젝트를 분야별로 쪼개야 한다는 반대 등에 부딪혀 진행할 수 없었다. 그나마 10년 동안 한 것이 대단하다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예산을 20% 이상 넘어서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또 프로젝트를 돕는 학생들의 월급도 얼마 이상은 안된다고 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



- 다른 나라 기업들과는 공동 프로젝트 진행을 어떻게 하나.

“스위스 제약회사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껏 글로벌 제약회사는 블록버스터(독점 상태로 대량 판매되는 약품. 예를 들면 비아그라)에 의존해왔다. 미국 화이자는 판매의 30%, 이익의 40%가 한 제품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약회사들이 블록버스터에 의존하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는 특정 소비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약을 만들어 파는 시대로 바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종류는 많아지고 개별 품목 당 판매량은 줄어들어 수지가 안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약품을 적절한 가격에 다양하게 만들어 팔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산은 6000만(약 690억원)달러, 기간은 10년이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산업 현실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접해 본 대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미국의 장점은 벤처기업의 기술력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였다.

“한국 대기업 직원들을 보니 굉장히 젊고, 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임금수준도 좋고 다들 만족하는 듯 보였다. 앞으로도 더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외국과의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인지 해외로 잘 돌아다니지 않았는데, 한국은 열심히 돌아다닌다. 이것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쟁력(장점)은 벤처나 중소기업 등에서 기술이 많이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이 없는 것처럼 보여질 지 모르지만, 미국이 생산을 안하는 것은 소비재일 뿐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물건의 20%는 미국에서 만든다. 이는 브릭스 국가 모두를 합한 것과 같은 규모다.

천 교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아픈 조언도 잊지 않았다. 특히 창의력을 강조했다. 국가와 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앞선 나라들을 벤치마킹하면서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런 경영방식은 후발주자일 때만 유효하다. 1위를 하면 더 이상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어진다. 그때 부터는 창조해야 한다. 일본이 요즘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한국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 미국식이 정답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맥락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하나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면 연구개발할 여유가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민간부문에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컨트롤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왔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하면 수혜를 입는 계층도 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쪽도 있다. 가능하면 내버려두는 게 좋다.”

이충희 기자/hamlet@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천정훈 MIT공대 석좌교수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마치고 국내에서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1977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후 다시 학업을 시작해 1980년 오타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1984년 MIT공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Sutek이라는 미국 현지 기업에서 부사장으로 5년간 일했다. 이후 MIT공대로 돌아가 기계공학과 교수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물질 개발 및 생산, 그리고 엔지니어링 관련 경영 분야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으며 지식경제부 산하 R&D자문단에 해외 석학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메카트로닉스 부문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메카트로닉스란 전기와 기계, 전자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에어백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충돌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는 센서가 필요하고, 센서가 작동했을 때 에어백을 터뜨려주는 기술도 필요하다. 천천히 바람이 빠지도록 설계도 해야 한다. 센서, 소프트웨어, 기계장치 등을 융합하는 것이 메카트로닉스라고 보면 된다.

천 교수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 동료이자 멘토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과도 직원 대상 강연을 하는 등 인연을 맺고 있다. 슬하에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딸과 역시 미국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현지 법무법인에 취직한 아들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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