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기획>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캡틴 윌리엄 해밀턴 쇼
선교사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6ㆍ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한국명 서위렴)의 ‘한국 사랑’과 희생정신을 기리는 추모공원과 동상이 60년만에 건립됐다.

서울 은평구는 쇼 대위의 아들 부부와 손자를 비롯한 유가족과 현인택 통일부 장관, 강영우 전 백악관 차관보,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쇼 대위를 추모하는 은평평화공원 개장식과 동상 제막식을 22일 가졌다.

쇼 대위는 1922년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녀 한국어가 유창하고 한국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웨슬리언대학을 졸업하고 1943년 미국 해군 소위로 임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제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민간인 교관으로 일하면서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태동기를 이끌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던 중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제2의 조국인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키고자 미 해군에 재입대했다. 그는 당시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가 왔을 때 한국에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심경을 알리기도 했다.

쇼 대위는 인천 상륙작전을 수행했으며 미 해병대 5연대 소속으로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해 김포반도, 행주산성, 신촌 노고산 전투 등에서 승리했으나 9월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매복해 있던 적의 총탄을 맞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 금성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됐으며 그의 유해는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아버지 윌리엄 얼 쇼 박사와 나란히 안장돼 있다.

쇼 대위의 아버지인 쇼 박사는 1890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1921년 평양 광성보통학교 교사로 한국에 왔으며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영변 만주 등에서 선교 사역을 했다. 6ㆍ25 전쟁 때 주한미군에 자원 입대, 군목으로 활동했고 한국 육군에 군목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한편 지하철 6호선 역촌역 역세권에 있는 은평평화공원은 5700㎡ 규모에 소나무동산, 벚꽃길, 중앙잔디광장 등 여가ㆍ휴게 공간이 조성돼 있으며 총 토지보상비와 공사비 등 총 51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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