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치로 아들 뒷바라지…YS ‘삶의 스승’
타계한 김홍조翁누구인가

김 前대통령 영원한 정치적 조언자…

`대도무문’의 길잡이 역할도



“국민들 앞에 맹세한 대로 무엇보다 깨끗하고 정직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

15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1992년 12월 19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당선자의 아버지 김홍조 옹은 정치적 이슈가 터져나올 때마다 그랬듯이 아들에게 세심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고 김홍조 옹은 김 전 대통령에게 ‘정신적 지주’이자 ‘삶의 스승’이었다. 나아가 숱한 우여곡절 때마다 훈수를 아끼지 않는 ‘정치적 조언자’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밥은 굶어도 아버지에 대한 문안인사를 거르는 일은 없을 정도로 효심을 발휘한 것도 김옹의 자식 사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어릴 적부터 ‘큰 인물’이 되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을 건넸고, 김 전 대통령이 부산 하숙방 벽에 붓글씨로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붙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통령 당선 당시 김옹은 “우째 안 기쁘겠노”라면서도 “호남에서 표가 적은 것이 못내 아쉽다”면서 김 전 대통령에게 표가 적게 나온 곳에 더욱 신경 쓰도록 주문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에 가지 않고 멸치나 잡을란다”던 김옹의 소탈함은 욕심 없이 큰길을 가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으로 이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 큰길을 가면 문이 저절로 열린다)을 늘 가슴에 새기며 숱한 정치 역정을 선 굵은 방식으로 헤쳐나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김홍조 옹을 찾았다.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후계구도를 구상할 때 주류인 민정계에 맞선 민주계의 반발이 이어졌고, 당시 김영삼 대표는 마산에 살던 아버지 댁을 찾았다. 부자간 애틋한 정을 나누기 어려운 노년-장년층이었지만, 김홍조 옹은 늘 김 전 대통령에겐 따뜻한 품이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후계자로 지목한 때에도 김홍조 옹의 후광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5인 자문그룹에 포함된 신명수 동방유량 회장 부친 신덕균(申德均) 씨가 YS의 김홍조 옹과 가까운 사이였고, 김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신 회장이 적극적으로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실패로 낙선하자 김옹은 아들을 다독이기도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 재임 중 손자인 현철 씨가 구속됐을 때엔 “자기 자식을 잡아넣는 아비가 어디 있으냐”며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다. 김옹은 김 전 대통령이 1979년 신민당 총재직을 정직당하고 의원직이 제명됐을 때와 19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을 때 가장 애간장을 태웠다고 한다.

김옹의 아들 뒷바라지는 멸치에서 시작돼 멸치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옹은 아들의 정치 입문 때부터 거제도산 멸치를 줄기차게 선물했다. 야당 시절에는 한 해에 3000상자, 여당 대표가 된 이후엔 5000여상자씩 추석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YS 멸치’를 받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서 정치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멸치 공화국”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홍조 옹은 이승을 떠났지만, 그가 보여준 자식 사랑은 큰 인물을 키워내는 ‘부정(父情)’의 전형으로 남을 것 같다.

신창훈 기자(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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